[위클리 리포트]‘코로나 빙하기’ 견뎌낸 항공사 직원들 30년 베테랑 조종사도 ‘울컥’… 악몽 같았던 1년 6개월 ‘위드 코로나’로 다시 날갯짓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비행기가 멈춰서면서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조종사, 승무원, 정비사들은 배달, 대리운전 등을 하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냈다. 이제 다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김관섭 티웨이항공 기장(왼쪽)이 인천∼사이판 비행에 앞서 객실 승무원들과 함께 운항 정보 공유 및 안전 점검을 하는 사전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김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0년 베테랑 기장인 김관섭 티웨이항공 기장(58)은 지난달 30일의 사이판 비행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김 기장 비행 경력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을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30년 비행 경력 동안 수도 없이 다녔던 하늘길이었다. 하지만 그날 비행에선 유독 긴장했다고 한다. 김 기장은 “비행 하루 전날, 혹시나 뭘 빠뜨린 건 없는지 교본을 펴고 항로를 점검하며 공부를 했다. 내가 준비하는 걸 보더니 아내가 ‘예전처럼 비행을 할 수는 있는 거냐’고 걱정하더라”며 웃었다.
이날 항공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김 기장을 비롯해 티웨이항공 객실 승무원들은 일일이 승객들을 맞이했다. “코로나19로 비행이 뜸한 동안에 비행과 승객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탑승한 승객들의 얼굴이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내 방송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지막에 ‘사랑해요, 티웨이’라고 말했어요. 승객들도 ‘안전하게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인사해 주시는데 눈물이 다 납디다.”
사이판은 올해 6월 한국이 처음 트래블버블(여행안전권역) 협약을 맺은 지역이다. 여름부터 티웨이항공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이 사이판에 취항했지만 8월까지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위드 코로나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9월부터 여행객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항공사들의 수익 감소는 직원들 생활에 타격을 줬다. 승무원들은 기본급이 많지 않은 대신 비행수당을 받아 급여를 채운다. 비행을 많이 해야 급여를 많이 받는 구조다. 하지만 비행이 없다 보니 휴직으로 월급이 3분의 2 이상 줄었다.
갑작스러운 수입 감소를 버티지 못한 승무원들은 아르바이트 등을 해야 했다. 2년 전 결혼했다는 저비용항공사 부기장 A 씨는 “부기장이 되려면 보통 2억∼3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나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출을 받아 교육을 이수하고 부기장이 됐다. 최근에 결혼하며 아파트 대출도 받았다. 코로나19가 정말 내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대리운전도 알아보고, 택배도 알아봤어요. 하루 이틀 나가 일당을 받는 음식 포장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동료 부기장들 대부분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김 기장도 지난 1년 반이 쉽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자 잠시 상념에 잠겼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항공업계 종사자들에게 금융권 대출은 ‘그림의 떡’이다. 금융사 대부분이 항공업계 종사자들에게 대출을 꺼리고 있다. 지인 가게 일을 돕고 있다는 한 대형 항공사 부기장은 “생활비가 없어서 새벽 구인 시장에 주기적으로 나가는 선배들도 있고 카페나 아파트 모델하우스, 전시회, 박람회 아르바이트를 하는 승무원도 있다. 시급을 더 주는 야간 아르바이트가 있대서 나갔는데 회사 동료가 거기 있더라. 생활비가 부족해서 아이들 학원을 끊어야겠다고 말씀하던 선배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항공기 정비사들도 혹독한 코로나 시국을 겪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한 저비용항공사 소속 정비사 권모 씨는 지난해 12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쇄골이 부러지고 어깨를 심하게 다쳐 7주간 입원을 했다.
“회사가 어렵고 상황도 좋지 않아서 회사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잠깐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 생각해서 4대 보험 가입도 안 했어요.”
권 씨는 “다들 생활이 힘든 것을 아니까 서로 뭐하고 사는지 이야기를 잘 안 하려 한다. 버티다 못해서 항공업계를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잡은 지인들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다시 업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지난해 2월부터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 인수가 확정이 되면 체불 임금을 받게 되지만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올해 6월부터 발생한 임금을 반납하기로 했다. 본인들 생활도 빠듯한 상황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통 분담에 나선 것이다.
장문기 이스타항공 차장은 “직원들 대부분이 배달이나 대리운전, 택배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회사를 살리자는 마음에 임금을 반납하기로 했다. 항공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잃고 싶지 않다. 다시 비상하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 분위기가 생겼다고 하지만 항공업계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여객 수요가 회복되려면 1∼2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기약 없이 막혔던 하늘길이 서서히 열린다는 점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업계는 연말까지 약 3000명의 여행객이 사이판을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확인서만 있으면 괌과 하와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12월 23일부터 주 2회 괌에 취항하는 에어서울은 최근 안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660여 일 만의 첫 해외 장거리 노선 재개를 앞두고 전사적인 안전 관리에 나선 것이다. 염원석 에어서울 기장은 “2020년 2월 장거리 국제선 비행이 마지막이었다. 다시 비행한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항공업이 다시 좋아지는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 코로나 시국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안전 비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보라 에어서울 승무원은 “오래 기다렸던 순간인 만큼 ‘너무 친절한 것 아니냐’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꼬 트인 하늘길… 괌-하와이 증편, 사이판 노선 연말까지 예약 거의 끝나
인기 휴양지 속속 운항 늘려… 내달부터 싱가포르도 트래블버블태국, 격리 없이 전역 여행 가능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에 따른 여행 수요 증가로 항공사들이 사이판과 괌, 하와이 등 휴양지와 싱가포르, 호주 등 중·장거리 노선에 속속 취항을 재개하고 있다.
2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티웨이항공, 제주항공이 사이판에 주 1회 취항을 하고 있다. 이들 항공사의 사이판 항공편은 연말까지 예약이 거의 다 찬 상태다.
사이판은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있으면 지정된 호텔에서 닷새간 격리를 한 뒤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다. 현재 사이판은 해외여행객들을 위한 지정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정 호텔은 거의 만실이다. 항공사들이 추가 운항을 하고 싶어도 호텔이 부족해 증편을 못 하는 상황이다. 사이판 정부는 추가로 해외여행객들을 위한 호텔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대표 인기 휴양지인 괌 노선 운항도 늘고 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10월부터 인천∼괌 노선을 주 2회, 티웨이항공은 주 1회 운영하고 있다. 에어서울은 12월 23일부터 인천∼괌 노선을 주 1회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도 12월부터 주 2회로 괌 노선에 취항할 예정인데 2003년 3월 이후 18년 만에 괌 노선을 재개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11월부터 주 3회 인천∼하와이 노선을 운항할 계획이다. 주 1회 정기편이 있었는데 주 2회 부정기편을 확대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11월부터 격주로 인천∼시드니 운항도 재개한다. 아시아나항공은 11월부터 인천∼방콕 노선을 현재 주 3회에서 주 7회 운항으로 늘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위드 코로나에 맞춰 여행객이 늘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여객 수요 회복 추이를 보면서 인기가 많은 여행지에 대한 증편 및 노선 추가 운영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1월부터는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빗장을 연다. 태국은 1일부터 격리 없이 자국 전역에 해외여행객을 받기로 했다. 싱가포르와 트래블버블도 시작된다. 백신 접종과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있으면 격리 없이 여행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여행은 지정된 항공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재 국내 항공사 중 대한항공(주 3회), 아시아나항공(주 3회)이 허가를 받았다.
인천국제공항뿐 아니라 김해국제공항에서도 사이판과 괌으로 떠나는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김해∼사이판 주 2회, 김해∼괌 주 1회를 운항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항공사는 선정되지 않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안전하게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면 여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백신 접종률 상승과 1회 검사에 6만 원 이상 들어가는 코로나 검사 비용 부담 완화, 해외여행 절차 간소화 등이 이뤄지면 여행객들이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