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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갇힌 사육 반달곰 ‘철창신세’ 벗어난다

입력 | 2021-11-02 03:00:00

‘곰 사육 종식’ 첫발 디딘 정부
웅담 수출길 막히고 수요 줄면서 곰 사육 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져
허술한 관리로 탈출 사례 잇따라… 당국, 불법 증식 개체 압수-보호
야생생물법 개정 처벌 수위 높여… 전남 구례 등에 보호시설도 조성



9월 충북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온 새끼 반달가슴곰들. 농가에서 불법으로 증식한 것을 환경부가 압수해 이곳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아래쪽은 농가에서 불법으로 증식된 반달곰들로, 이들은 제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좁은 철창에 갇히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환경부·녹색연합 제공


두 달 전 충북 청주동물원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경기 용인시와 여주시 농가에서 태어난 새끼 반달가슴곰(반달곰) 두 마리다. 두 마리 다 올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생물법상 현재 농가에서 키우는 반달곰들은 증식이 금지돼 있다. 이 반달곰들은 불법 증식으로 태어났다. 환경당국은 해당 농가들의 불법 증식을 확인하고 두 마리를 압수해 이곳 청주동물원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정부가 불법 증식으로 태어난 반달곰을 압수해 보호 조치한 것은 처음이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국제적 멸종위기종 불법 증식의 고리를 끊을 첫발을 내디뎠다”며 환영 메시지를 냈다.

흔히 ‘반달곰’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반달곰을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곰이 자연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369마리의 곰들이 일반 농가에서 사육되고 있다. 이 중 일부 농가에서 불법 증식과 도축을 지속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곰 사육 종식 이행 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다.

○ 반달곰, 다 같은 곰이 아니다

반달곰은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는다.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리산에 방사돼 살고 있는 반달곰들은 러시아나 중국 북부 등에서 들여온 ‘우수리종’이다. 한국 고유종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혈통이다.

반면 농가에서 철창에 갇혀 사육되는 반달곰은 1981∼1985년 말레이시아, 일본, 대만 등에서 수입한 반달곰 493마리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여러 나라에서 섞여서 수입된 데다 사육 과정에서 유전적 배경이 다른 종끼리 섞여 ‘외래종’으로 분류된다. 국내 복원 사업에 투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달곰 수입은 농가 소득 증대와 외화벌이 목적으로 198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당시 곰의 쓸개(웅담)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있던 터라 많은 농가들이 곰 사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국제사회에서 멸종위기종인 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985년 7월 국내 곰 수입이 중단됐다.

1993년에는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수출길도 막혔다. CITES는 멸종위기종의 무분별한 포획과 채취, 거래를 국제적으로 금지한다. 이에 판매가 막힌 사육 농가들은 국내에서라도 웅담을 팔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1999년 24년생 이상 곰의 웅담 채취가 허용됐다. 2005년에는 도축할 수 있는 곰의 나이가 10년생으로 줄었다. 그러나 웅담을 제외한 곰의 식용을 제한하면서 수요가 줄자 사육 환경이 점점 열악해졌다. 음식 쓰레기가 섞인 사료를 먹거나, 움직이기도 어려운 철창 안에 갇혀 지내는 곰들이 늘었다.

○ “사육 반달곰,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철창에 갇혀 있는 반달곰. 녹색연합 제공

이후 정부와 사육 농가, 전문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사육곰대책위원회는 한국의 사육 곰 산업을 서서히 줄여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2014년 정부는 예산 57억 원을 들여 희망하는 농가의 반달곰 967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지원했다. 철창 속 반달곰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먹이가 부실하거나 위생 상태가 열악한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농가는 곰들을 비바람도 막을 수 없는 외부 철창에 가둬 길렀다. 허술하게 관리하다 곰이 탈출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특정 농가들은 계속해서 곰을 몰래 증식해 웅담 판매를 시도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16년부터 불법으로 태어난 반달곰은 최소 37마리로 파악된다. 사육 반달곰을 증식하다 적발되면 야생생물법에 따라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불법 증식은 이어졌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는 “솜방망이 처벌보다 불법으로 얻는 이득이 더 커서 벌어진 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육 반달곰의 열악한 처우와 불법 증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올해 야생생물법을 개정해 불법 증식 처벌 수위를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 원으로 높였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사육곰 보호시설 설치 예산 2억5000만 원을 편성했다. 현재 전남 구례군에 곰 49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보호시설을 조성 중이다. 또 충남 서천의 옛 장항제련소 부지 일부에도 보호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이 새끼 곰들을 보기 위해 청주동물원을 찾았다. 좁은 우리에 갇혀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던 이 새끼 곰들은 현재 동물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조금씩 돌아다니며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한 장관은 “곰 사육은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며 “사육 곰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인도적으로 관리되도록 사육곰 농가와 협의해 연말까지 곰 사육 종식 이행 계획안을 마련하는 등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