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토너먼트와 승자독식

입력 | 2021-11-02 03:00:00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두 주인공 박해수(왼쪽)와 이정재. 게임에 참가한 두 사람은 거액의 상금을 놓고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 넷플릭스 제공

이원홍 전문기자


가을은 토너먼트가 마무리되는 계절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각종 대회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중세 기사들의 마상시합에서 유래됐다는 토너먼트는 두 선수(혹은 팀)가 맞붙어 진 쪽은 탈락하고 이긴 쪽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패자가 추가 경기 없이 곧바로 탈락하는 방식을 ‘녹아웃 토너먼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녹아웃(Knock Out)이란 프로복싱에서도 쓰는 말이다. 상대를 완전히 쓰러뜨렸을 때 사용하는 ‘KO’가 녹아웃의 줄임말이다. 이러한 토너먼트는 많은 팀들이 참가하면서도 단기간에 최강자를 가려낼 수 있기에 널리 쓰인다.

최근 토너먼트라는 경기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다. 참가자들이 사생결단의 각종 게임을 벌이는 이 드라마 속의 진행방식은 녹아웃 토너먼트와 닮아 있다.

오징어게임이 주목받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건 그 극단성이다. 탈락자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 거액의 상금을 차지한다. 현실 세계에서도 각종 대결과 경쟁이 펼쳐지고 승패 및 그 결과에 따른 아픔이 있지만 드라마 속의 내용은 그에 대한 극단적 비유다. 가공할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그렇다면 진짜 토너먼트를 일상적으로 치르고 있는 스포츠 속의 현실은 어떤가. 영화 속처럼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다. 졌다고 죽이지는 않는다. 패자부활전도 있다. 한 번의 대결에서만 져도 탈락하는 걸 막기 위해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결합시킨 대회도 많다. 서로에게 골고루 상대해 볼 수 있도록 여러 번의 경기 기회를 주는 것이 리그제다. 우리가 자주 보는 축구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기 방식은 조별리그와 토너먼트가 결합된 형식이다. 조별리그를 통과한 팀들이 16강부터 결승까지 토너먼트를 치른다. 손흥민(29·토트넘)이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토너먼트를 배제한 리그제로 운영된다. 승자가 많은 것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다 가져가지는 않는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의 우승 상금은 약 1900만 유로(약 258억 원)였고 준우승팀의 상금은 1500만 유로(약 203억 원)였다. 1차 예선참가팀에도 28만 유로(약 3억8000만 원)가 주어졌고 조별리그 및 16강 8강 4강 등 각 단계에 진출한 팀들에 모두 상금이 주어졌다. 이런 점들은 스포츠계에서 승자독식 부작용의 완화를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이 같은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징어게임에 의해 제기된 질문은 남는다. 그것은 경쟁과 승패의 구도를 없앨 수 있는가이다. 승패는 필연적으로 패배의 아픔을 남기기 때문이다. 경쟁이 아닌 화합, 승패의 우열이 없는 형태의 게임이 스포츠계의 주류가 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형태의 게임이 개발된다면 현대 스포츠의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현대 스포츠의 속성은 경쟁과 대결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시스템과 문화가 쉽게 없어질 리 없다. 경쟁의 생산성에 주목해 경쟁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동력이라는 시각도 강하다.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은 경쟁에서 이긴 승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스포츠 현장 역시 이러한 인식이 매일 반영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매일 승패의 결과에 대한 승복을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경쟁 시스템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룰의 공정함이다. 룰의 공정함이 흔들릴 때 참가자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스포츠를 유지시켜 주는 근간도 룰과 그 집행의 공정함이다. 아마도 현대 스포츠의 변화가 시작된다면 이러한 룰의 공정성이 의심될 때일 것이다. 그 룰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이는 현 스포츠 체제 역시 끊임없이 시대의 인식에 맞추어 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경쟁 체제를 벗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과 스포츠가 나타난다면 그 역시 우리 사회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것은 경쟁 체제의 생산성과 부작용에 대한 오랜 고민을 통과한 먼 후일일 수도, 어떤 계기를 통한 급격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사회의 깊고 성숙한 변화의 결과물이기를 바란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