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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숨결 담은 최욱경의 추상미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입력 | 2021-11-02 03:00:00

최욱경 작가의 대표작 ‘환희’(1977년), 캔버스에 아크릴, 227×45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꽃 이파리가 춤을 추는 듯한 이미지로 환희의 순간을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꽃 이파리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아니, 춤을 추고 있다. 광란의 춤은 언뜻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나름의 리듬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각자의 존재를 뽐내고 있다. 환희, 그 자체다. 환희.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에 형태 또한 다양하다. 그 형태는 나무 이파리여도 좋고, 심지어 사람이어도 좋다. 선가(禪家)의 ‘벽암록’ 해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깨닫고 나니 온갖 풀들조차도 즐거워 춤추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한 소식을 얻은 풀들. 모든 것이 즐겁지 않겠는가. 환희의 경지다. 누가 환희를 그림으로 표현했는가. 바로 최욱경의 걸작 ‘환희’(1977년)를 일컫는 것이다. 즐거운 일은 곁에서 보고만 있어도 축복이다. 수희찬탄(隨喜讚嘆), 바로 그런 경지다. 물론 환희의 경지는 고통의 바다를 건넌 다음에 만나야 더 값지다.

45세로 요절한 최욱경 작가(왼쪽 사진)는 올해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개최된 ‘여성 추상미술가들’ 전시에 한국 작가로서 유일하게 포함됐다. 오른쪽 그림은 1977년 작 ‘줄타기’, 캔버스에 아크릴, 225×195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욱경(1940∼1985). 꼭 45년만 살고 서둘러 이승을 떠났다. 요절은 천재들의 특권인가. 왜 불꽃처럼 살다 스스로 매장하는가. 최욱경은 20대 초반 미국 유학을 가 추상미술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 그것도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유행할 때 신천지를 만난 것이다. 그의 화풍은 격동적일 만큼 속도감 있고, 자유분방했다. 꼼꼼하게 자화상을 그린 작품도 남아 있지만, 최욱경의 피는 항상 뜨거웠다. 그의 열정은 1970∼80년대 한국 화단에 족적을 뚜렷하게 남겼다. ‘여성’ 미술가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미국에서도 페미니즘 미술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지만, 최욱경의 오지랖은 매우 높은 곳에 있었다. 올해 5월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여성 추상미술가들(Women in Abstraction)’이라는 전시를 개최했는데, 한국 작가로 유일하게 최욱경을 선택했다. 나는 이 땅의 선구적 여성 미술가인 나혜석을 연구해 2권의 저서를 출판한 바 있다. 그리고 박래현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군 김기창의 그늘에 가려 있던 박래현 미술을 더 높게 부상시킬 수 있었다. 박래현 이후 최욱경 미술을 새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최욱경이 부모의 도움으로 박래현 부부에게 그림공부를 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현재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를 열고 있다. 작가의 사망 직후 회고전을 연 바 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최욱경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복습의 마당을 마련한 것이다. 내년 2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 등 공간으로 구성해 최욱경의 걸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내 그림 속에는 생명체들의 생명이 숨 쉬고 있다. 내 그림 속에는 그 생명체들이 숨 쉬는 색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그 생명의 숨결들을 화면 속에 재생시켜 보려고 색상들을 찬란한 태양광선에서 찾아보았다. 이런 작업들은 자연과의 만남에서 추려내어진 경험들로서 아무래도 자연은 내 그림의 고향이다.”(1982년)

최욱경의 어록은 그의 예술 원형을 짐작하게 한다. 생명의 숨결, 그것을 화면에 담고자 한 화가의 작업. 그리하여 화가의 고향은 자연으로 귀결되고 있다. 최욱경은 꽃들에서뿐 아니라 사막에서조차 자연의 원초적 숨결을 안았다. 그는 1976년 무렵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에 체류한 바 있다. 사막이 있고,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가 독특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샌타페이를 좋아해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한 바 있다. 원주민의 토담집을 비롯한 풍경은 시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한때 미국 여행지 가운데 한 군데를 추천하라면, 서슴없이 샌타페이를 뽑기도 했다. 거기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이 있다. 뉴욕에서 살았던 오키프는 생애의 후반부를 이 지역에서 살면서 숱한 걸작을 남겼다. 화면 가득 그린 꽃은 마치 여성의 성기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어떤 생명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꽃은 나에게 기쁨이며 사랑이고 또 생명력이다”라고 최욱경은 말했지만, 이는 오키프의 세계와 직결된다. 최욱경의 작품에서 나는 오키프를 느끼기도 한다. 거의 한 세기를 살면서 미국 여성미술 선구에 섰던 오키프와 달리 최욱경은 그의 생애 반도 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샌타페이와 타오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들의 생애와 예술을 반추하기도 했다.

최욱경의 예술은 시심(詩心)을 담고 있다. 하기야 그는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년) 같은 시집을 출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시 ‘나의 이름은’에서 자신을 ‘길 잃은 아이’에서 ‘이름 없는 아이’라고 단언했다.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이는 예술가의 방황과 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번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와 같은 고뇌 속에서 작가는 ‘대향연’을 꿈꾸었다. ‘찬란한 하늘의 대향연’, 바로 그것이었다. 최욱경과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최욱경은 열정이 많고 따듯했다.” 그의 작품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년·국립현대미술관 소장)나 흑백의 연필 그림 ‘마사 그래함’(1976년·개인 소장) 같은 작품에서 작가의 열정을 느낀다. 아니,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장 가득 넘쳐흐르고 있는 열정 그리고 환희. 이는 요절한 최욱경의 멋진 선물, 바로 그것이리라.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