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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은우]“더러운 중국산”

입력 | 2021-11-03 03:00: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더러운(dirty) 중국산 철강이 우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31일(현지 시간) 유럽연합과 철강 관세 분쟁을 끝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였다. ‘더러운 이유’는 덤핑을 일삼고 탄소배출 기준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쁜 중국을 빼고 미국과 유럽이 화해한 셈인데,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의 속내가 담겨 있다.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한다는 뜻이다. 거친 말투에서 보듯 미중 경쟁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회를 앞두고 14개 동맹·우방국을 긴급 소집했다. 급조된 ‘글로벌 공급망 회복 정상회의’가 열리게 됐다. 그는 “동맹국 간 조율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동맹국 리스트에 중국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단일 공급망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중국이 장악한 공급망이 안보 위협이라는 의미다. 미국 동맹국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할 상황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은 난처하게 됐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명분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재고와 주문 등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이다. 두 회사는 중국에 공장을 뒀고, 현지에 수출도 한다. 미국이 요구한 정보에 고객(중국) 정보가 포함된 셈이다. 생산기지는 중국에 있고, 원천기술과 공급망은 미국에 의존하는 처지에서 한쪽을 선택할 수는 없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위태롭기만 하다.

▷LG그룹은 내년 미국 워싱턴DC에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삼성과 SK도 같은 곳에서 대관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투자를 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당장은 공장 증설 등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중국이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인위적 소그룹은 백해무익하다”며 미국 중심의 동맹을 비난했다. 이러다간 기업의 전략적 판단 대신 두 나라 요구에 따라 공장을 더 지어야 할 수도 있다. 비효율과 막대한 비용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다.

▷중국과 동북아시아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역할을 미국과 동맹국이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장기전이 될 미중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 생산능력 네트워크 등 실력을 쌓는 수밖에 없다. 국익 앞에선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식’ 화법을 구사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그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긴장의 끈을 더 조여야 한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