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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특별하고 참된 우정

입력 | 2021-11-04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27〉시인의 노비 친구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 백만장자인 필립(오른쪽)은 전신마비가 된 자신을 간병하는 가난한 이민자 드리스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자 감동한다. NEW 제공


알베르 세라 감독의 영화 ‘기사에게 경배를’(2006년)은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이 아니라 우정에 집중한다. 괴짜 기사는 종자 산초에게 연신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주지만, 산초는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벗이다. 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특별한 우정을 청나라 원매(袁枚·1716∼1798)의 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



스물한 살의 원매는 숙부를 만나러 고향 항주(杭州)를 떠나 육천 리 밖 계림(桂林)에 갔다. 시에서 ‘노성(奴星)’은 당나라 한유(韓愈)의 종 이름이 ‘성(星)’이었던 데서 유래한 말로 종을 의미한다.(‘送窮文’) 상령은 숙부 집의 어린 종으로, 나이와 신분의 차이에도 원매와 가깝게 지냈다. 원매가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청나라 과거 명칭)에 응시하러 떠날 때 상령은 차마 헤어지지 못해 성 밖까지 따라 나왔다. 원매도 상령과 헤어지는 것이 애달파 눈물을 쏟았다. 원매는 그를 참된 친구로 대하고 종이라고 천시하지 않았던 듯하다.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리크 톨레다노 감독의 ‘언터처블: 1%의 우정’(2011년)에서도 백만장자 필립과 가난한 흑인 이민자 드리스의 우정을 다룬다. 그들은 상위와 하위 1% 계층으로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드리스는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필립을 진심으로 보살피며 필립의 진정한 벗이 된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보완해 가며 우정을 나눈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노비계약서(동約)’는 본래 한나라 왕포(王褒)의 글로 노비의 의무 등을 익살맞게 쓴 것이다. 시인은 상령에게 자신이 과거에 합격했단 소식을 들으면 노비계약서를 들고 수도로 찾아오라고 당부한다. 호언장담 속에 상령에 대한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영화 속 필립 역시 드리스의 장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간병을 그만두게 한다. 원매도 필립처럼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도우려 했지만 낙방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시에선 사대부끼리 서로 주고받거나(寄贈) 떠나보내며(送別) 지은 시가 유독 많다. 하지만 젊은 수재(秀才)와 어린 종의 이별시는 보기 힘들다. 시를 읽으며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차이도 지기(知己)의 가치를 손상시킬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