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준 의장. 뉴시스
미국이 작년 초부터 거의 2년 동안 이어진 경기부양 기조를 접고 통화정책 정상화의 첫 스텝을 밟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현지 시간) 이달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테이퍼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준은 이날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작년 12월 이후 연준의 목표를 향한 경제의 상당한 진전을 고려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에 따라 연준은 11월부터 월간 자산 매입 규모를 국채 100억 달러, 주택저당증권(MBS) 50억 달러 등 모두 150억 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연준은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기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0.0~0.25%)으로 낮추고 매월 국채 800억 달러와 MBS 400억 달러 등 12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며 시장에 돈을 풀어 왔다. 이제는 이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 내년 6월까지는 자산 매입 규모를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11월, 12월에 각각 150억 달러씩 줄인 뒤 경기 상황을 보고 테이퍼링 속도를 확대 또는 축소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테이퍼링이 공식 개시됨에 따라 이제 시장은 연준의 다음 스텝인 금리 인상이 언제 단행될지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만일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충분하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내년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연준은 내년 중반쯤 자산매입을 완전히 종료하고 2년 넘게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책금리를 올리는 결정을 할 공산이 크다. 또 연준이 출구전략에 예상보다 속도를 낼 경우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이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일어날 수 있고, 이에 대응해 각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가계 및 기업의 부채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3년 연준의 테이퍼링 때는 신흥국 통화가치가 크게 흔들리고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긴축 발작’으로 불리는 큰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연준은 일단 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에는 선을 긋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테이퍼링을 시작하는 것이 금리 인상에 대한 직접적인 신호는 아니다”면서 금리 인상을 위해서는 고용 등 경제지표가 더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작년 3월 이후 20개월 동안 동결돼 온 제로 금리는 앞으로도 최소 몇 달 동안은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기존의 입장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연준은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들을 반영해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에 비하면 다소 후퇴한 것이지만 그래도 물가 상승 국면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보는 기본 시각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폴 애시워스는 CNBC방송에서 “연준은 아직 인플레 상승을 대체로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서 “이는 여전히 비둘기파(통화 완화주의)들이 연준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연준의 이런 입장은 테이퍼링으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해석도 많다. 2013년 같은 충격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의 여지를 주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내년 6월 테이퍼링 종료와 함께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내년 말까지 1~4차례의 금리인상을 전망하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