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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아이들에 마음건강 찾아주는 ‘치유 스타’

입력 | 2021-11-06 03:00:00

[박성민의 더블 케어]청소년 대안학교 ‘프레네스쿨 별’ 이야기
정신건강 전문의 김현수 교장 설립… 자유로운 수업 통해 정서안정 유도
사재 털어 20년간 260여명 돌봐… 배움 느린 경계선 지능 학생 대상
타인과 어우러지는 방법 가르쳐… 당장의 효과보다 각자 수준 맞춰



1일 서울 관악구의 프레네스쿨 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김현수 교장(왼쪽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스타 칼리지 졸업생 및 재학생들이 학교를 상징하는 인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카페 등록 상호는 ‘아자라마’이지만 교사들과 학생들이 원한 이름은 초성으로만 쓴 ‘ㅇㅈㄹㅁ’이었다. ‘완전하지 않은, 애매한 상태의 경계인’을 표현하고자 했다. 인형(오른쪽 위 사진) 눈 모양에 그 뜻을 담았다. 아래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구기 종목(탁구) 수업 장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프레네스쿨 별 제공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러브홀릭 ‘버터플라이’)

음악 수업이라기보다는 노래방이나 밴드 연습실 같았다. 한지훈 군(14·가명)과 최주현 양(19·가명)은 내리 다섯 곡을 부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잠시 딴짓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윤이준 군(15·가명)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까지 능숙하게 기타 반주를 해냈다. 윤 군은 “예전 학교에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힘들었는데 여기선 기타도 배우고 연주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 ‘별지기’가 된 정신과 전문의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대안학교 ‘프레네스쿨 별’의 첫인상은 ‘자유’였다. 2일 참관한 음악 협동조합 수업은 20여 개 선택 과목 중 하나다. 장애나 따돌림 때문에 일반 학교에 적응 못 했던 아이들도 여기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20년째 학교를 운영 중인 김현수 교장은 “소외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대개 위축돼 있거나 폭력적이다. 감정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의 본직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현재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다. 1992년 공중보건의 시절 소년교도소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진짜 부도덕해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보단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나쁜 유혹에 빠진 아이들이 훨씬 많더군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에 갇히는 거죠. 이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전문의가 된 후로도 계속 학업 중단 청소년을 보살폈다. 교과 수업만큼 중요한 게 정서적 안정과 치유라는 걸 그때 알았다. 2002년 동료 3명과 함께 사재 1억5000만 원을 들여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의 첫 이름은 ‘치유적 대안학교 별’. 현재 건물 3층의 반쪽 공간에서 시작해 어느덧 건물 다섯 층을 사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20년 동안 다녀간 학생은 260여 명. 현재 30명이 재학 중이다.

○1교시는 ‘둔감력’, 2교시는 ‘분노 조절’

이곳의 커리큘럼은 대학처럼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으로 나뉜다. 한 학기에 하나 이상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분노 조절, 갈등 해결, 낙관주의, 반(反)편견, 둔감력, 정중한 거절, 치유 산행 등이다. 보통 학생에겐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겐 하나같이 버거운 과제들이다. 김 교장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겐 타인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 정서 학습’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범죄에 쓸 휴대전화나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둔감력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평상심을 유지시키는 훈련이다. 가령 영상 등으로 약한 자극을 준 뒤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식은땀이 나서 옷을 벗겠다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거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학 수업에서도 답을 빨리 찾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교사는 문제를 풀어 나가는 각자의 방법을 인정해 준다. 정답을 맞힌 아이가 친구들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정은 대표교사는 “학습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보단 아이들 각자의 수준을 인정해주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스무 살, 준비 없이 사회로 떠밀리는 아이들

이곳 아이들의 상당수는 ‘경계선 지능’이다. 지능지수(IQ) 71∼84로 장애 등급은 받지 않지만 자립이 쉽지 않다. 일반 학생들보다 배움이 느려 ‘느린 학습자’라고도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외 연구에선 인구의 12∼15%를 경계선 지능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관계 맺는 것도 서툴다. 가장 큰 고비는 성인이 되면서 찾아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은 쉽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적응이 어렵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김 교장은 2010년 '스타 칼리지(현 청년행복학교 별)'을 만들었다. 스무 살 이후에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일종의 직업학교다. 치유에서 자립으로 학교의 목표와 역할을 넓힌 것이다. 졸업 후엔 바리스타, 쿠키 만들기, 농장, 공방 등 5개 사업장을 만들어 다양한 일 경험을 쌓도록 했다. 현재 약 30명이 청년행복학교 별에 등록돼 있다. 졸업 후 학교가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일하는 ‘가디언’도 16명이다.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박정식 씨(24)는 의사 소개로 3년 전 스타 칼리지를 찾았다. 제과제빵과 영상 편집을 배우고 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됐다. 박 씨는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됐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경계선 지능 등 정신건강 취약 청년들은 성인이 되면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사회로 내던져진다. 미성년자가 아니고 장애 판정도 받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에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이들에게 취업 지원(49.1%)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만한 대인관계(20.4%), 주거(12.2%), 보호기간 연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청년행복학교 별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공예를 가르치는 안은비 교사는 “실패 경험이 누적된 학생들은 자신이 환대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교사 등 지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느린 학습자의 범위를 넓게 보면 청소년과 청년 인구 중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진단 중심의 장애 판정 기준을 기능 중심으로 바꿔 돌봄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지옥’ 코로나19로 악화된 마음 건강

프레네스쿨 별의 지난 20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4년 위탁형 대안학교 지정을 추진하며 인근에 3층 건물을 구입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반년 만에 쫓겨났다. 대안학교를 혐오시설로 여긴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시위를 한 것이다. 대출까지 받아 구입한 건물을 급히 처분하면서 수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20년 동안 진 은행 빚만 5억 원이 넘는다.

운영 예산은 늘 팍팍하다. 청소년 학교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3분의 2, 나머지는 학부모와 일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지자체 지원이 없는 스타 칼리지는 학부모 후원과 기부만으로 운영된다. 김 교장은 “많은 급여를 줄 순 없겠지만 청년 100∼150명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김 교장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 더 염려스럽다. 김 교장은 “PC방도 못 가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생지옥 같다’ ‘스마트폰 유배 생활’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김 교장은 어른들이 무심한 사이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했다.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비관론, 허무주의에 빠진 아이들이 많이 보여요.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들은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고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물어봐야 합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