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힘/박정재 지음/352쪽·1만8000원·바다출판사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큰엉해안경승지의 산책로. 길 끝 나뭇잎들의 윤곽선이 한반도 지도를 연상시킨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기후변화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책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후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학과 지리학을 통합한 ‘빅 히스토리’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후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과거 사례들을 바탕으로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약 700만 년 전 등장한 고인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때부터 기후변화가 지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숲이 줄고 열대초원은 늘었다. 숲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초원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네 발로 걷는 것보다 효율적인 직립 보행을 선택했다.
저자는 한국 고고학계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송국리 문화의 갑작스러운 소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송국리 문화는 3000년 전부터 금강 중하류의 충청권을 중심으로 생성된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으로, 2300년 전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다. 저자는 전남 광양 섬진강 일대의 퇴적물 연구를 바탕으로 2800년 전과 2400년 전에 각각 발생한 극심한 가뭄이 송국리 문화의 소멸을 가져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남 부여군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등 청동기 유물. 3000년 전 생성된 송국리 문화는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이다. 사진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저자는 “기후변화가 필연이라면 새로운 환경을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국리 문화가 국내에서는 사라졌지만 일본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인류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야 하는 현 인류에게 필요한 해법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