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펴든 채 가을 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 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 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니다
죄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가을 손 조용히 여미면 떠날 날도 보입니다.
이상범(1935∼ )
땅 파서 장사하는 사람 없고, 남들에게 베풀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인생을 보라. 가는 게 있어도 오는 게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분명히 줬는데 남들은 기억도 못 하는 경우는 더 많다.
용서란 어렵다. 어려우니까 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팔랑팔랑 낙엽 같은 시가 날아와 우리의 마음을 식혀 주리라. 이 작품을 쓴 이상범 시조 시인은 팔순이 넘었고 그가 시조를 쓴 세월만도 60년에 가깝다. 그에게 미움이 없었겠는가. 괴로움이 없었겠는가. 노인의 지혜 같은 이 시조는 머뭇거리는 우리의 등을 떠밀어 준다. 놓아주라, 비워내라. 어서 잊고 마음을 씻어내라. 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가을이지 않은가. 나무도 낙엽과 이별하고 열매도 다 익어 떨어지는 가을이란 용서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