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 “부동산 투기 막지 못해 좌절… 이재명 정부에는 없을 일”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환담하고 있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정권교체론’이 장안의 화제다. 송 대표는 10월 17일 종합편성채널 MBN에 출연해 “대선은 과거에 대한 평가 심판의 성격도 당연히 일부 있겠지만, 좀 더 큰 것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권교체 욕구가 높은데 여든, 야든 정권은 교체되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당선하더라도 새로운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다음 날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출마하는 게 아니다. 정권교체다, 아니다를 떠나 새로운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연이틀 ‘정권교체론’에 불을 댕긴 것이다.
송 대표의 ‘정권교체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 후보는 ‘이재명 정부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10월 2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재명이라는 한 인간의 삶, 정치 역정, 국민의 기대, 이런 측면에서 상징성이 있어 보인다”고 자평했다. “집권 시 새 정부의 이름을 ‘이재명 정부’로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어차피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들은 정부를 이재명 정부라고 부를 텐데 애써 이를 강조하는 까닭은 뭘까. ‘문재인 정부 시즌2’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새 정부 이름, 이재명 정부로 하고 싶다”
이 후보는 11월 2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서도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을 7번이나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인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며 확실하게 차별화를 시도하는 발언을 내놨다. 이 후보는 “부동산 투기를 막지 못해 허탈감과 좌절을 안겨드렸다. 공직개혁 부진으로 정책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은 결혼, 출산, 직장을 포기하게 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런 일, 다시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 대표가 ‘정권교체론’에 불을 지피고 이 후보는 이재명 정부론으로 화답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여론이 정권교체를 원해서다.국민 여론이 정권교체를 원하다 보니 전통적인 정권교체 의미까지 바꿔가며 ‘정권 재창출’을 ‘정권교체’라고 우기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송 대표의 ‘정권교체론’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문 대통령일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계 의원 사이에서도 우려하는 기류가 읽히지만,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냈고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10월 21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정권교체냐, 정권계승이냐, 재창출이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송 대표의 발언이 지나치다고 보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도 “생각의 정도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윤 의원의 발언에서 문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은 친문계 핵심 가운데 1명인 민주당 김종민 의원의 발언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김 의원은 10월 27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송 대표의 정권교체론에 대해 “윤석열 지지율은 윤석열 씨가 좋아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좀 혼내줄 수 있는 적임자다, 칼잡이다’ 이것 때문에 지지하는 분이 많다. 그런데 ‘우리도 그런 편이다’라고 하면 얼마나 오해가 생기겠는가”라면서 “‘이재명이 되면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고 나중에 또 혼내줄 수도 있는 거야’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안 좋게 본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문 대통령에게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적한 것이다.
박정희 길 걷겠다
송 대표의 정권교체론과 이 후보의 이재명 정부론은 좋게 말해 본선을 겨냥한 외연 확대 전략의 의미도 갖는다. 뒤집어보자면 중도층과 보수층을 현혹하는 전략이다. 이 후보는11월 2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서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신속한 국가 투자에 나서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일종의 금기어인 ‘박정희’라는 단어를 거론하고 나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하니 국민의힘이나 보수 지지층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송 대표의 ‘정권교체론’과 이 후보의 ‘이재명 정부론’에 담긴 또 다른 정치적 함의도 그냥 넘길 수 없다. 바로 문 대통령에게 사실상 탈당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라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당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 아래 여당을 탈당했다. 문 대통령은 그나마 버텨주는 지지율을 근거로 그런 전례와 무관한 듯 행동하고 있지만, 서서히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13호에 실렸습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