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프레네스쿨 별’ 운영,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교장 사재 털어 20년 동안 학업 중단 청소년 260여 명 돌봐 스무살 이후 자립 위한 직업학교 ‘스타 칼리지’ 운영 “코로나19 이후 허무주의 깊어져, 마음 건강 세심히 살펴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청소년 정신건강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빈곤주민을 위한 상담센터 빵과 영혼’을 운영했고,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부회장,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관악구 봉천동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다. 교육과 마음 치료, 직업 탐색이 동시에 이뤄지는 6층짜리 건물이다. 학교이자 병원인 셈이다. 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을 다쳤던 아이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씩도 머물다가 일상 회복의 꿈을 안고 떠난다. 2층엔 학생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도 있고, 최근엔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유튜브 채널도 시작했다.
병원장이자 교장은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55)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 따돌림, 인터넷 중독, 은둔형 외톨이 등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다. 봉천동 토박이인 김 교장은 이 건물에 정신과 의원을 개원했다가 아예 학교까지 만들었다. 2002년 2월 ‘치유적 대안학교 별’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성장학교 별’을 거쳐 현재는 ‘프레네스쿨 별’이 됐다. 프레네 교육학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자율’을 강조하는 교육 이론이다. 치유와 성장, 자율까지 학교 이름에 김 교장이 청소년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 모두 담겨 있다.
음악 수업이라기보다는 노래방이나 밴드 연습실 같았다. 한지훈 군(14·가명)과 최주현 양(19·가명)은 내리 다섯 곡을 부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잠시 딴 짓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윤이준 군(15·가명)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까지 능숙하게 기타 반주를 해냈다. 윤 군은 “예전 학교에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힘들었는데 여기선 기타도 배우고 연주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학교의 첫 인상은 ‘자유로움’이었다. 2일 참관한 음악 협동조합 수업은 20여개 선택 과목 중 하나다. 장애나 따돌림 때문에 일반학교에 적응 못했던 아이들도 여기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유를 강조하는 이유를 김 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외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대개 위축돼 있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이죠. 감정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을 되찾을 수가 있어요. 자율을 주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가르칩니다.”
1일 서울 관악구의 프레네스쿨 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김현수 교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스타 칼리지 졸업생 및 재학생들이 학교를 상징하는 인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카페 등록 상호는 ‘아자라마’이지만 교사들과 학생들이 원한 이름은 초성으로만 쓴 ‘ㅇㅈㄹㅁ’ 였다. ‘완전하지 않은, 애매한 상태의 경계인’을 표현하고자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진짜 부도덕해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보단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나쁜 유혹에 빠진 아이들이 훨씬 많더군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에 갇히는 거죠. 이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전문의가 되고 병원을 개원하면서도 학업 중단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중퇴 학생들의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는 ‘도시 속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돕기도 했다. 빈곤과 학업 중단 청소년들에게는 늘 정서적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치유와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2002년 동료 3명과 함께 학교를 만들었다. 사재 1억5000만 원을 들였다. 현재 건물 3층의 반쪽 공간에서 시작한 학교는 어느덧 건물 다섯 층을 사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20년 동안 다녀간 학생은 260여 명. 현재 3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상근 교사는 5명. 어두웠던 아이들을 ‘별’처럼 밝힌다는 의미에서 선생님들은 ‘별지기’로 부른다.
프레네스쿨 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택 과목인 구기종목 수업 중 탁구 수업 시간. 프레네스쿨 별 제공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범죄에 쓸 휴대전화나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둔감력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평상심을 유지시키는 훈련이다. 가령 영상 등으로 약한 자극을 준 뒤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식은땀이 나서 옷을 벗겠다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거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학 수업에서도 답을 빨리 찾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교사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각자의 방법을 인정해 준다. 정답을 맞힌 아이가 친구들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정은 대표교사는 “학습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보단 아이들 각자의 수준을 인정해주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정해진 학년이나 졸업 시기는 없다. 학기가 시작하면 4주 동안 졸업 신청을 받는다. 학생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되 학부모와 교사가 졸업해도 괜찮을지 논의한다. 졸업이 결정되면 8주 동안 진학이나 취업, 일반학교 복귀 등 졸업 후 진로에 맞춰 졸업 준비를 돕는다.
2010년부터는 직업학교인 ‘스타 칼리지’를 세워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고 있다. 이들의 일자리를 위한 5개 사업장 중 하나인 카페 ‘아자라마’.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 교장이 2010년 ‘스타 칼리지(현 청년행복학교 별)’를 만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스무 살 이후에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일종의 직업학교가 필요했다. 치유에서 자립으로 학교의 목표와 역할을 넓힌 것이다. 졸업 후엔 바리스타, 쿠키 만들기, 농장, 공방, 출판·편집 등 5개 사업장을 만들어 다양한 일 경험을 쌓도록 했다. 현재 30여 명이 청년행복학교 별에 등록돼 있다. 졸업 후 학교가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일하는 ‘가디언’도 16명이다.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박정식 씨(24)는 의사 소개로 3년 전 청년행복학교 별을 찾았다. 제과제빵과 영상 편집을 배우고 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됐다. 박 씨는 “서로 존중해 주는 분위기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됐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10대 때 입학해 청년행복학교 별을 거쳐 가디언으로 일하고 있는 한지윤 씨(27·여)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들을 만났다”며 웃었다.
이들은 관계 맺는 것도 서툴다. 가장 큰 고비는 성인이 되면서 찾아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은 쉽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적응이 어렵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성인이 되면 최소한의 보호막도 사라진다. 미성년자가 아니고 장애 판정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에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이들에게 취업 지원(49.1%)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만한 대인관계(20.4%), 주거(12.2%), 보호기간 연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경계선 지능을 복지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눈높이 직업 교육을 통해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 노력한다. 독일의 카리타스 돈보스코 직업교육훈련소는 경계선 지능을 포함한 경증 장애를 가진 16~25세 청소년을 위한 교육 기관이다. 교사 55명이 600여 명의 학생을 돌보는데, 이 중 약 20%가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다. 청소, 자동차정비, 요리 등 18가지의 직업군을 실습 위주로 교육한다. 비장애인이 2, 3년 걸리는 교육을 3, 4년에 걸쳐 가르친다.
1974년 설립된 독일 카리스타 돈보스코 직업교육훈련소는 자폐증, 난민 자녀 등 직업을 갖는데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청소년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홈페이지 캡쳐
청년행복학교 별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곳에서 공예를 가르치는 안은비 교사는 “실패 경험이 누적된 학생들은 자신이 환대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교사 등 지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느린 학습자의 범위를 넓게 보면 청소년과 청년 인구 중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진단 중심의 장애 판정 기준을 기능 중심으로 바꿔 돌봄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 예산은 늘 팍팍하다. 청소년 학교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3분의 2, 나머지는 학부모와 일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지자체 지원이 없는 스타 칼리지는 학부모 후원과 기부만으로 운영된다. 김 교장은 “많은 급여를 줄 순 없겠지만 청년 100~150명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수 교장은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 취약 계층의 마음 건강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김 교장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 더 염려스럽다. 김 교장은 “PC방도 못가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생지옥 같다’ ‘스마트폰 유배생활’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김 교장은 어른들이 무심한 사이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했다.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비관론, 허무주의에 빠진 아이들이 많이 보여요.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들은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고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계속 물어봐야 합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