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부족 지속될 우려 우리 현실에 즉각 영향 주는 미중 경쟁 외교 에너지 집중할 영역부터 파악해야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인 2020년 2월 워싱턴을 방문하고 20개월 만에 미국 출장 기회가 생겼다. 항상 만석이던 비행기 좌석이 대부분 비었고, 북적이던 미국 공항 입국장은 너무도 한산해서 택시 예약 시간보다 훨씬 빨리 수속을 마치고 나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와 보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영업자들이 입은 피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즐겨 찾던 식당과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그 장소들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예전 모습을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애플스토어에 새로 나온 휴대전화 재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도체 부족의 영향이 이런 소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정리하는 중인데, 본인이 가지고 있던 차를 구입했을 때의 가격보다 오히려 비싸게 팔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얼마 전 미국으로 근무를 나온 친구는 새 차를 주문할 경우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 새 차 사는 것을 포기하고 지내고 있다고 했다. 역시 이유는 반도체 부족이었다.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도체 공급 위기가 현실로 닥친 미국 자동차 업계와,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는 주의 주지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반도체 부족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했다. 사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사태는 코로나로 인한 경기 저하와 또 예상을 넘는 경기 상승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서 수요 변화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 대응책으로 재택근무와 이동 제한을 강제 혹은 권고하다 보니 자동차 사용의 필요성이 크게 떨어져서 새로운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고 업계는 그에 따라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주문을 취소했는데, 백신 보급과 경기 부양책으로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예상보다 빨리 자동차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재택 교육과 근무가 늘어나면서 반도체가 필수적인 각종 컴퓨터와 통신장비 등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서 반도체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더욱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그 핵심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게 미국인들의 분석이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위산업 기술 혁신에 있어서 군민융합 전략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채택하자 미국은 매우 큰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 기술 개발이 정부와 군 위주로 진행될 때는 군에서 개발된 기술을 민간에서 적용 및 발전시키는 형태였다면, 민간의 역동성이 보다 강해진 현대에는 민간에서 개발한 기술을 군에 적용시켜 첨단 무기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군과 민간의 영역이 구분돼 있지만, 중국은 군과 민간 영역 구분이 모호한 것을 넘어 민간이 군을 위해 존재하는 형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분석이다. 그래서 과거 민간 교류 차원에서 받아들이던 중국 학생 및 과학자들과의 교류가 순수한 민간 교류가 아닌 중국 공산당과 군을 위한 첩보활동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기업이 첨단기술을 가진 다른 나라의 기업을 산다거나 유능한 인재를 데려가는 것, 혹은 중국인이 미국 연구기관에 오는 것 등을 단순히 경제 활동이나 민간 연구 교류 활동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군을 위한 활동으로 보고 미국의 안보에 위협으로 판단한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추상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 즉각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인식이 정책화하면서 여러 부처 간 서로 다른 정책 우선순위와 국내 정치적 고려로 인해 어느 방향, 어느 정도의 세기로 나가게 될지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의 외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영역이 어디인지 파악해야 한다. 불필요한 데 에너지를 쏟기에는 너무도 급박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