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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그렸던 상대적 빈곤,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

입력 | 2021-11-10 03:00:00

석영중 교수, 입문서-연구서 발간
“읽기 어려운 도스토옙스키 소설, 200가지 명장면이 길잡이 역할
시대 초월한 문학의 정수 생생”… 과학과 버무린 ‘깊이읽기’도 펴내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이 놓인 러시아문학 서가 앞에 서 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실용서나 철학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대중들이 다가가기 힘든 작가로 여기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작품을 쉽게 소개하거나, 깊이 있게 바라보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약 1년 전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62)는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출간 요청을 받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장을 지낸 석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관련 책 4권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낸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올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는 대중입문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과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를 최근 동시에 발간했다.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그는 “도스토옙스키는 전혀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11일 출간되는 8권짜리 도스토옙스키 전집(열린책들) 분량만 5640쪽에 달할 정도로 작품이 방대한 데다 심오한 철학·종교사상이 곳곳에 녹아 있어서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시대에 등장인물 한 명의 대사가 5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쉽게 읽을 수 있겠어요? 또 인물들의 러시아식 이름은 얼마나 길고 어려운가요? 젊은 사람들이 읽으려고 마음먹어도 의욕이 사라지는 악조건이죠.”

이 같은 진입장벽(?)은 그가 대중입문서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을 펴낸 계기가 됐다.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을 뽑아 전달하면 젊은 독자들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봤다. “한 학기 동안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을 읽는 교양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교수님 책이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까지 들었다니까요.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젊은 독자들도 명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가 뽑은 200개 장면의 문장들에는 지금 읽어도 시대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빈궁한 하급관리 마카르는 연인에게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건 돈이 아닌 타인의 조롱과 비웃음이라고 고백한다. “나를 파멸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삶의 이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지거리입니다”라는 마카르의 토로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에도 큰 울림이 있다. 그는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는 모두가 ‘절대적 빈곤’만 강조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했다”며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좌절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도 마카르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연구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에서는 거장의 문학을 현대과학과 연관지어 살펴본다. 예컨대 장편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이 진정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인지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이는 뇌가 인간의 모든 선택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최신 뇌 과학 연구주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왜 지금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이 어떻게 인공지능(AI)과 공존할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 아닙니까. 도스토옙스키는 건축학, 수학, 물리학을 폭넓게 공부해 과학에 대한 첨예한 관심이 작품들에 반영돼 있어요. 인간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작가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면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