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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요소수 자구책’… 통학버스 노선 조정하고 해외 직구도

입력 | 2021-11-10 03:00:00

[요소수 대란]
“정부 대책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공급대란 길어지자 대안 모색




요소수 판매 소식에 몰려든 시민들 9일 전북 익산시 익산실내체육관 앞에 마련된 요소수 임시 판매장에 요소수를 구하려는 시민 약 400명이 몰려들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익산시와 요소수 제조사가 요소수 2250L를 판매했으나 200여 명은 요소수를 구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국적으로 요소수 품귀 현상이 나타나자 요소수를 구하고자 판매처를 공유하고 발품을 파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익산=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통원 차량 이용 가정의 협조와 이해를 구합니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은 최근 ‘요소수 부족으로 통원 버스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는 가정 통신문을 보냈다. 이 유치원은 “기존 버스 운행이 중단되면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 스타렉스 차량으로만 운행한다. 승차 가능 최대 정원이 11명이라 운행에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공지했다. 운행 노선과 탑승 시간을 모두 바꾸고, 걸어서 등·하원이 불가능하거나 꼭 통원차를 이용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우선권을 줄 예정이다.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정부가 요소수를 확보한다고 하지만 그 물량이 언제 어디에 풀릴지 알 수 없다. 우리한테까지 차례가 올지 장담할 수 없다”며 “요소수가 필요 없는 차를 빌릴지, 통학 차량 운영 시간을 조정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요소수 대란 해결을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쥐어 짜내고 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요소수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른바 ‘플랜B’를 세워가며 대비에 나서고 있다.

요소수를 구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자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요소수를 직접구매(직구)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배송비가 비싸고 통관 절차가 복잡하지만 요소수를 구할 수만 있다면 번거로운 절차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달 5일 요소수를 해외직구로 구입했다는 이모 씨는 “내가 산 요소수가 정품인지, 배송이 제대로 되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럽지만 지금은 대안이 마땅치 않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구매했다”고 말했다.



요소수 공장까지 가 줄서고 온가족 동원… ‘요찾사’ 카페도 생겨
요소수 자구책 찾는 시민들

요소수 생산공장에도 빈 통만… 9일 충남 논산시의 한 요소수 생산업체 관계자가 요소를 구하지 못해 텅 빈 창고를 바라보고 있다. 차량용 요소수 수급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화물트럭 운전사 등 생계 활동을 위해 요소수가 필요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논산=뉴스1

요소수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온 가족이 요소수 파는 곳을 찾아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는 A 씨는 최근 요소수를 구하기 위해 아내에게 발품을 부탁했다. 운전하다가 주유소에 가서 요소수를 달라고 하면 “재고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요소수 파는 곳을 찾아 가족들을 동원해 판매점에 줄을 서게 했다.

A 씨는 “요소수가 없으면 운행을 할 수 없어 아이들이 밤새 인터넷 해외 직구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정비소, 요소수 공장까지 간 적도 있다”며 “동료 기사는 부인이 요소수가 있다는 곳에 밤늦게 달려가서 겨우 한 통을 사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화물차 운전하는 남편이 쓸 요소수 구합니다” “아버지가 연로해 직구를 못 하셔서 온 가족이 요소수를 구하는 중”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요소수 판매처와 재고 상황, 연락처 및 요소수 대란 대비책을 공유하는 ‘요찾사(요소수를 찾는 사람들)’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도 개설됐다. 요찾사를 개설한 유모 씨는 “요소수 정보를 공유하려고 열흘 전에 만들었는데 500여 명이 모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요소수를 구하려는 회원도 있고, 화물차 운전사 출퇴근에 휘발유 차량을 이용하도록 도와주자는 아이디어를 올린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요소수가 귀하다 보니 가까스로 구한 요소수를 따로 모아두는 운전사들까지 생겨났다. 물류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B 씨는 “일부 주유소가 요소수가 급한 화물차 한 대에 하루 10L씩만 요소수를 넣어준다. 그러다 보니 요소수를 받아온 뒤 일부를 차에서 빼내 따로 보관해 놓고 다시 요소수를 받으러 가는 기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요소수 대란 장기화에 대비해 버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운송업체는 화물차 기사들을 위해 해외 직구, 요소수 공동 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대형, 중견 물류 업체들이나 식자재 배송을 하는 업체들은 차가 멈추면 안 되니 비싼 돈을 주더라도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요소수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화물이 멈추면 생계가 끊기니 어떻게든 요소수 물량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이 커지자 요소수 개인 거래를 막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중고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가 정부 요소수 불법 유통 단속에 맞춰 개인 간 요소수 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요소수 판매 관련 사기 신고가 잇따라 접수되어서다.

요소수 부족에 따른 차질은 현실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건설 현장에서 요소수가 필요한 장비는 전체의 33%인 것으로 파악했다. 실제 전국건설노동조합이 7, 8일 조합원 2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2.4%는 요소수 문제로 장비를 가동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4.3명은 해외 직구를 시도 중이라고 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환경 정책에 따라 요소수 사용 규정을 잘 지켰는데 돌아온 건 요소수 대란이었다. 현 추세라면 일주일 내 장비 가동이 멈출 수 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요소수 대란에 따른 자구책을 내놓으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전남 순천시에서는 마을버스 노선 일부를 단축 운행하고 있다. 순천 조곡동 철도마을을 운행하는 마을버스 일부가 12인승 경유차 대신 24인승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대체되면서 아침 및 저녁시간대에 일부 구간을 운행하지 못하고 있다.

거리 낙엽도 제대로 못 치우고 있다. 최근 늦가을에 접어들고 비가 내리면서 거리에 낙엽이 쌓이고 있지만 이를 치울 차량 운행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요소수 부족으로 필수 업무 차량만 운행하면서 도로 청소는 쓰레기 수거 후순위 작업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쓰레기 수거 횟수를 줄이거나 가구 및 가전 등 대형 폐기물 수거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