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미국-중국 갈등에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공급망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큰 영향을 받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요소수 품귀 사태로 중국이 언제든 각종 원자재를 무기화할 수 있음을 체감한 한국 주요 기업들은 당장 내년도 경영 전략 수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급망관리시스템(SCM)을 점검하고, 핵심 부품에 대한 수입처 다변화 방안을 찾는데 안간힘이다.
재계 관계자는 “촘촘히 연결돼있는 공급망에서 기술이나 원자재 등의 핵심 위치를 차지한 국가는 자원이나 기술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무기화해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자원 및 생산은 중국에, 기술과 판매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계속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중국 생산·수출 물량이 포함된 사업 정보 제출을 요구한 것에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텅쉰왕(騰訊網) 등 중국 매체들은 최근 반도체 정보 제출과 관련해 “요소수 대란이 발생한 한국은 중국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며 “중국 또한 한국이 하는 행동에 따라 다음 수순을 결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국내 산업계에선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가 결과적으로 중국의 ‘힘의 과시’ 목적이 담긴 게 아닌지 주목하고 있다. 중국 내 요소 가격은 올해 들어 최저가를 기록 중이다. 정부가 요소 수출을 통제하면서 중국 내 재고가 쌓인 탓이다.
중국이 다른 원자재를 무기화할지 우려도 크다. 마그네슘이 대표적이다. 8일 로이터통신은 전 세계 마그네슘 공급의 85%를 맡고 있는 중국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에 빠질 것이라 보도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제조업 원자재의 8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그네슘의 경우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수입 비중은 90% 이상이라 중국이 멈추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미국은 동맹국을 활용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불확실성을 꺼리는 기업으로서는 사업의 변수일 수밖에 없다. 9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 요청에 따라 반도체 사업 관련 정보를 제출했다. 미국 압박에 세계 67개 반도체 기업이 ‘숙제’를 냈고, 미국은 제출 여부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미국 중심 파트너십 동참 여부를 중계하다시피 했다.
국내 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중국의 원자재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단기적 해결책은 좀처럼 못 찾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당분간 테이블에 앉을지 말지 결정하라는 미국, 원자재 공급으로 협박하는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