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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대통령, 만용 부리는 대통령 [오늘과 내일/이진영]

입력 | 2021-11-11 03:00:00

인기 없는 개혁 미루고 폼 나는 일엔 호기
차기 대통령은 난제 외면 않는 ‘용기’ 절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11.9/뉴스1 © News1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유엔 기후총회 기조연설에서 “자연은 오래도록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이제 우리가 자연을 위해 행동하고 사랑해야 할 때”라며 “매우 도전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천명했다. 세계 1·3·4위 배출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가 못 줄이겠다며 꽁무니를 빼는데 우리가 앞장서겠다고 했으니 박수를 보내야 할까.

기후위기 대응은 시대적 당위지만 지구에 큰불이 났다고 모두가 똑같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는 없다. 장비도 든든하고 기술도 있다면 뛰어드는 게 용감한 행동이다. 장비도 기술도 없으면 얼른 119에 신고하고 대피를 돕는 게 용기 있는 행동이다. 무턱대고 뛰어들다간 불도 못 끄고 다치기만 한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문 대통령의 탄소중립 계획(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은 만용이다. 정부가 감당할 수 있다고 제시한 최대치(32%)보다도 목표가 높다. 2030년이면 9년밖에 안 남았는데 동원한다는 기술은 전문가들도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한다. 정부가 소요 비용을 공개 않는 사이 여기저기서 천문학적인 추산치들이 나온다. 2050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핵심 수출산업 6개 분야에서만 199조 원이 들고, 수입 수소를 액화·운송·저장하는 데만 66조 원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지구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탄소 배출량은 세계 배출량의 1.5%밖에 안 된다. 욕조에 물 한 컵 붓는 정도의 기여를 하겠다고 포스코 같은 기업 몇 개가 문을 닫는 피해를 감수하는 게 만용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만용의 반대가 비겁이다. 불이 났는데 못 본 체하는 경우다. 현 정부의 연금 정책은 비겁하다. 연금은 고갈이라는 화재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재설계를 해야 한다.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김영삼(공무원연금) 김대중(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노무현(국민연금) 이명박(공무원연금) 박근혜(공무원연금) 정부에선 빠짐없이 개혁을 관철시켰다. 현 정부만 유일하게 국회 180석을 갖고도 연금개혁엔 손도 대지 않아 2030세대는 내면서도 못 받을까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공무원·사학·군인연금 적자도 4년 후엔 지금의 2배(11조 원)로 불어난다.

비겁하거나 만용 부리는 대통령 탓에 고생한 걸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는 호기의 끝은 다들 아는 대로다. 정부 구조조정은커녕 공무원 수를 역대급으로 늘려놓아 국민 부담이 커지고 민간 부문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문재인 케어’ 생색내기로 건보재정은 거덜 나고 중소병원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저성과자 해고와 성과연봉제 도입 등 이전 정부가 어렵게 해낸 노동개혁은 백지화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만용을 부린 결과가 일자리 감소와 비정규직 청년 급증이다.

문 대통령 재임 기간에 나랏빚이 400조 원 늘어 내년엔 1000조 원을 넘기게 됐다. 그런데도 차기 대권 주자들은 오늘만 살 것처럼 “1인당 지원금 50만 원씩” “자영업자 50조 원 지원”을 외친다. 표 떨어지는 증세나 연금개혁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 징후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대통령, 해서는 안 될 일 안 하고 해야 할 일은 꼭 해내는 용기 있는 대통령을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지지율 떨어질까 의무는 외면하면서 위임받은 권한으로 지지층만 바라보며 만용이나 부리는 대통령 뒤치다꺼리는 그만하고 싶다.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