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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 이재명 “‘줄빠따’ 맞던 공장…손가락 잘리던 고참”

입력 | 2021-11-12 10:05:00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에 다니던 시절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모습. ©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2일 소년공 시절 냉장고 공장에서 폭력을 당한 경험과 위험한 작업환경, 동료 직원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던 산업재해 사례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 몸, 백 개의 흉터’라는 제목의 아홉번째 웹 자서전을 게시했다.

이 후보는 “빙과류 판매용 냉장고를 만드는 회사로 공장을 옮겨 철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맡았다”며 “거대한 샤링기에 철판을 올리고 페달을 밟으면 순식간에 단두대 같은 날이 떨어지며 두꺼운 철판도 가위 속 종이처럼 가볍게 잘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근하면 군복 입은 관리자가 군기를 잡는다고 줄을 세워놓고 소위 ‘줄빠따’를 때렸다. 줄줄이 엎드려뻗쳐를 한 채로 엉덩이를 맞았다”며 “불량이 많이 난 날에도 빠따를 맞았다. 퇴근할 때는 군기를 유지한다며 공장문을 나서기 전 또 때렸다. 인권 같은 것은 책에나 있는 이야기였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어느 날 옆에서 절단 작업을 하던 고참의 ‘어!’라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꿈틀거렸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며 “사고를 당한 고참이 ‘어어’라고 하더니 히죽 웃으며 그것을 얼른 집어 들었다. 그는 이미 두 번의 손가락 사고를 당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참은 봉지에 손가락을 담고 작업장을 뛰쳐나가면서 그때서야 비명을 질렀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며 “누군가 내 귀에 ‘샤링기는 날이 예리해서 사고가 나도 처음엔 잘 몰라. 그냥 차갑고 서늘하지. 손을 들어보고야 아는 거야’라고 속삭였다”고 했다.

이 후보는 “그곳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나와 같은 처지의 소년공들뿐이었다”며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에게 도시락 하나를 더 싸달라고 했다. 자취를 하며 점심을 굶는 아이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고 했다.

이어 “어느 날부터 다른 소년공들도 각자 도시락을 꺼내 나눠 먹기 시작했다. 별것 없는 뻔한 반찬에 딱딱하게 식은 밥.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나눠 먹는 그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함께 나누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공장에서도 함석판을 자르느라 수없이 찔리고 베였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눌리고, 떨어지고, 꺾이고, 소음과 유독약품에 노출됐다”며 “덕분에 내 몸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남았다. 아마 백 개도 더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