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사태, 초연결 위험성 보여줘 공급망 전쟁에 정부는 대증 처방만
김용석 산업1부장
사랑하는 사람끼리 싸울 땐 별 사소한 게 다 무기가 된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차가운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 상대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관계없는 타인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중국발 요소수 부족 사태는 이런 싸움을 닮았다. 유럽의 외교전문가인 마크 레너드는 ‘Age of Unpeace’라는 책에서 현재 강대국 국제관계를 ‘서로를 견딜 수 없어 하지만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로 묘사한다. “좋은 시절에 공유했던 많은 것들은 (비극적이게도) 나쁜 시절엔 서로 해를 입히는 수단이 된다.”
사실 요소수 원료인 요소는 부가가치가 낮고,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배출해 국내 생산이 자취를 감춘 품목이다. 경유를 주유하면 서비스로 한 통 넣어주는, 그런 제품이었다. 중국에서 원료를 가져와 완제품을 만드는 분업 체제면 충분했다.
이런 사태를 고스란히 지켜본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계열 런민쯔쉰은 “이번 위기를 통해 한국이나 미국 모두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가진 지위를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항하면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레너드는 전통적인 개념에선 전쟁이 아니지만 무역전쟁, 경제제재, 사이버공격 등으로 매년 나오는 수백만 피해자를 보면 평화라고 부를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현재를 ‘불(不)평화의 시대(Age of Unpeace)’로 정의한다. 초연결 시대, 세계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서로를 쉽게 공격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 관세, 경제제재, 규제 등은 상대방이 의존하는 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됐고, 세계는 훨씬 더 위험해졌다. 이런 전쟁에선 한 나라의 군대가 아닌 사회의 약자들이 가장 먼저 총을 맞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해 중국을 따돌리고, 미국과 유럽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의 ‘더러운 철강’을 제한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그 여파로 한국 반도체와 철강 회사들, 연관된 많은 중소기업이 전쟁에 휘말려 들고 있다. 원자재 공급망 재편은 인플레이션에 더해 가격 상승 원인이 된다. 높은 물가는 사회 약자들의 삶을 옥죌 것이다.
국민들 삶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부지불식간에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데 정부 인식은 안이하기만 하다. 급한 요소수 물량을 확보하고선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전화위복이 됐다. 이번에도 그런 학습효과가 있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늑장대응으로 민간에 피해를 안긴 것도 문제지만 ‘요소수를 공급하거나, 불화수소를 국산화하는 것’만으로 이 사태를 충분히 해결했다고 여긴다면 더 큰 문제다.
지금은 ‘평화 속 전쟁’ 시대다. 정부가 세계를 보는 정확한 시야와 긴장감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 위험에 노출된 국민만 또다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