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재택근무의 진화… “이젠 휴양지서 일하고 스트레스 날려요” MZ세대의 ‘뉴노멀 근무’ 환경… 스타트업-IT기업 중심 확산
여행지에서 일하면서 휴식을 즐기는 ‘워케이션’이 새로운 업무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격근무가 확산되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가 경제활동의 주력으로 자리 잡으며 일과 휴식, 여행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보기술(IT) 기업과 스타트업들은 공유 오피스와 체류비 등 을 제공하며 임직원의 워케이션 근무 여건 마련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한 직장인이 휴가지에서 단풍을 바라보며 업무하고 있는 모습. 야놀자 제공
《노트북만 들고 있으면 바로 그곳이 사무실이 되는 시대. 일터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다. 한적한 여행지를 찾아 낮에는 일을 하고, 일과 후엔 여가를 즐기는 ‘워케이션(일+휴가)’이 새로운 업무 트렌드로 확산하고 있다.》
《#1.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다가 다른 풍경 속에서 일을 해보니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고나 할까요. 업무 스트레스가 확 해소되는 느낌이었어요.”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조동현 씨(30)는 올해 6월 8박 9일의 기차여행을 떠났다. 하루는 충북 제천 의림지 주변을 거닐다가 다음 날은 안동댐에서, 또 하루는 경북 경주 황리단길에서 머물며 추억을 쌓았다. 평범한 여름휴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 씨는 ‘업무 중’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 또는 이동 중에 기차 안에서 문서작업을 하고 낮에는 여행지 카페에서 원격으로 화상회의를 했다. 조 씨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사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며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마케터로서의 시각이 넓어진 것 같다”고 했다. #2. “섬진강 인근 소나무 군락지인 경남 하동 송림공원이 제 ‘위성 오피스’가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다 보니 주변에서도 다들 업무 환경을 바꿔 보려고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직장인 김민호 씨(38)는 지난해 9월과 이달 경남 하동에 머물며 업무와 일을 병행했다. 한적한 소나무 군락지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업무를 처리하다가 일이 없을 때는 집라인을 타거나 섬진강에서 카누를 즐겼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무실 업무 환경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데 자연만큼 좋은 환경이 있을까요.”》
휴양지에서 재택근무… 워케이션이 뜬다
여행지에서 일하며 휴식을 즐기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 새로운 업무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원격근무가 가능한 디지털 기반이 조성되면서 ‘뉴노멀 업무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성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워케이션의 저변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 ‘워케이션’ 확산
이달에 제주 공유 오피스를 이용했다는 개발자 박세현 씨(25)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일할 때는 ‘리프레시’를 위해 잠시 커피 한잔하는 게 전부였지만 고개만 들면 바다가 보이는 환경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했다. 윤태석 인덴트코퍼레이션 대표는 “제주도에서 근무한 직원들의 업무 평가가 높게 나오고 있다”며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 오피스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무 서비스 ‘삼쩜삼’을 개발한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도 6월 전 직원에게 2주 휴가지 원격근무와 일주일 휴가, 303만 원의 비용을 지원하는 ‘워케이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는 “연초에 집중됐던 업무에 시달린 직원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며 “만족도도 높고 실제 업무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계속 시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야놀자, CJ ENM 등 IT 및 콘텐츠 기업에서도 워케이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야놀자는 ‘유연한 근무환경 구축’을 목표로 강원도관광재단과 협력해 일주일간 호텔과 식사, 법인차량을 제공하는 워케이션 제도를 지난달 31일 시작했다. 임직원의 피드백을 반영해 지역과의 연계 관광상품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놀러 가라”며 직원들의 등을 떠미는 이유는 오히려 ‘업무 효율’이 향상된다는 판단에서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일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졌고, 지쳐 있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았다”며 “막상 추진해보니 집중력이 높아지고 효율성도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 ‘위드코로나’에도 ‘일+휴가’ 흐름 확산될 듯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진행되고 있지만 워케이션은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상석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마케팅팀장은 “워케이션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업무 방식”이라며 “재택근무 환경이 발전해 가면서 워케이션 수요는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워케이션 시장 규모는 성장세에 있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워케이션 시장 규모는 2020년 699억 엔(약 7300억 원)에서 2025년 3622억 엔(약 3조7700억 원)으로 5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7∼9월 에어비앤비 숙박예약액의 20%는 한 달 이상, 45%가량은 일주일 이상의 숙박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최고경영자(CEO)는 “생활과 일, 여행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워케이션이 업무 형태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를 하나의 기업문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 팀장은 “아직 기업에서는 ‘일은 어떻게 시키나’ ‘평가는 어떻게 하나’ 등 부정적 목소리가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업무관리 시스템 등 기술적 정비와 함께 업무 효율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동석 강원도관광재단 국내마케팅팀장도 “워케이션이 복지나 휴가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업무 방식으로 정착돼야 지속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