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최고기술책임자) 1000만원 자본금 창업 회사 코스닥 상장 3000억원 가치 “10년 전 카이스트 교원창업 ‘外道한다’ 눈치” 이재명 후보 ‘로봇개’ 학대 논란 4족 로봇이 회사 대표 제품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는 최근 카이스트에 50억원을 기부했다. 10년 전 200만원 주식 가치가 2500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 달 25일 카이스트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휴보(HUBO) 아빠’로 불리는 오준호(67)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명예교수가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50억3900만원을 내놓은 것이다. 오 교수는 국내 최초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 세계적 로봇공학자로 손꼽힌다. 지난해 2월 정년퇴임한 그가 5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10년 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로 ‘교원 창업’을 하면서 학교에 200만원어치 주식을 내놓은 게 50억원의 거금이 됐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일 대전시 유성구 카이스트 인근에 자리 잡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찾았다. 이 회사는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로보월드’에서 사족보행 로봇을 뒤집어 논란이 됐던 제품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서남표 총장, ‘실험실 창업 해보자’
오준호 CTO가 10년 전 교원 창업 당시를 회고하며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오 교수는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0년대 초 카이스트에서 기술이전센터장과 신기술창업지원단장을 맡으면서 기술 이전과 학생 창업 특허 등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엔 “연구중심대학에서 무슨 창업이냐”며 교수가 창업하는 것을 학자의 ‘외도(外道)’로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기술이 사장(死藏)되는 것은 문제라면서 ‘연구만 하는 기술은 어디다 쓰느냐’는 정부의 따가운 눈총도 받을 때였다.
“2005년부터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를 이끌어 두 발로 걷는 ‘휴보’를 연구실에서 만들었어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난이 고조되자 정부에서 정책자금을 풀면서 미국 대학에도 많은 돈이 지원될 즈음이었습니다. 2011년 미국 대학에서 휴보 6대를 구매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휴보 한 대에 40만 달러라고 했더니 6대를 사겠다고 240만 달러 견적서를 보내왔어요. 2,3주 뒤엔 싱가포르 전자연구소에서도 휴보 2대를 연구용으로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엉겁결에 휴보 8대 선주문을 받게 된 것이죠.”
● 지분 20%를 학교에 기부하다
2015년 미국 재난로봇경연대회에 참가한 휴보. 쟁쟁한 세계의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사진 카이스트
지금은 여러 규제가 풀렸지만 당시엔 교원 창업은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교수가 창업한 뒤 1년 동안은 회사 대표이사를 맡아야 했다. 1년 동안 교수 신분을 갖고 휴직이나 겸직이 가능했다. ‘1+1 조항’이 있는데 휴직·겸직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문제는 창업 2년이 지난 뒤였다. 계속 회사 대표를 맡으려면 교수직을 내려놓든가 그렇지 않으면 회사 경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오 교수는 창업 1년 뒤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 자리를 카이스트 제자인 이정호 박사에게 넘겼다. 그리곤 경영에선 손떼고 기술자문을 맡았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출발했어요. 2011년 창업 당시 회사 지분의 20%를 학교에 기부하는 게 룰이었어요. 주식 400주(200만원 어치)를 학교에 냈습니다. 이러니 누구도 창업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20% 의무기부 조항이 2%로 낮춰졌습니다. 교원 창업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후 자본금을 1억원으로 늘렸는데 추가로 학교에 더 기부할 필요는 없었어요.”
미국과 싱가포르 등에 휴보 10대를 팔기로 하고 생긴 40억원은 시드머니가 됐다. 창업 후 4,5년 동안 누적 매출이 130억원 가까이 발생했다. 오 교수의 석 박사 제자 등 직원 15명을 둔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렇게 출발했다. 회사가 어려웠을 때도 현금 20억~30억원은 항상 비축해 두고 있었다. 여느 벤처회사와 달리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었던 것은 휴보의 뛰어난 기술력과 잠재적 성장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 2015년 재난로봇 경연대회 ‘팀카이스트’ 우승을 거머쥐다
2015년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팀카이스트가 우승해 200만 달러 상금을 받았다. 사진 카이스트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퍼모나 시에서 열린 재난로봇 경연대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는 오 교수에게 한국 로봇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였다. 오 교수가 주도한 팀카이스트(TEAM KAIST)의 ‘휴보’가 미국팀의 ‘아틀라스(Atlas)’를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4년 오 교수가 한국의 첫 인간형 로봇을 만든 후 11년 만에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2017년 회사는 벤처캐피탈 투자를 유치한다. 한국투자파트너스 KTB네트워크 SBI인베스트먼트(소프트뱅크인베스트먼트) 등에서 100억원을 내고 지분 14.5%를 가져갔다. KUDOS는 지분 4.5% 투자자다. 빠른 시일 내에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투자 조건이었다.
● 2번의 상장 실패, 지난해 최고 경쟁률로 코스닥 입성
‘2021 로보월드’에 선보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4족 로봇. 사진 레인보우로보틱스
세계적인 로봇 기술을 인정받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유치했지만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8년 투자 유치 후 상장신청서를 냈지만 자격 미달로 주간사에서 철회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듬 해 회사 면모를 갖춰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최종 심사에서 낙방했습니다. 주력 제품인 협동로봇(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 개발에 전력해 시제품까지 내놓았지만 주력분야 매출은 아직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기술력은 A를 받았지만 이 로봇이 과연 시장에서 팔릴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것이죠. 주간사인 미래에셋대우에서 상장 후 소화되지 않는 주식은 모두 인수한다는 주간사보증 트랙을 내걸었지만 증권거래소에서 마지막 단계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당시엔 실망이 컸지만 이것이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매출 50억원인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성장성을 중시한 기술상장 특례로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적자액은 20~30억원이나 됐지만 미래 성장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청약경쟁률이 1470대 1로 코스피 코스닥 사상 통틀어 최고였다. 카카오게임즈 하이브 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1만원 공모가(액면가 100원)는 첫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에 상한가로 종가 마감)을 치고 하루 조정 후 3일째 다시 상한가로 마감했다. 카이스트에 주식으로 기부한 400주는 무상증자와 액면분할을 거치면서 어느덧 20만주가 됐다. 카이스트는 18만주 가량을 매각해 50억여 원의 거금을 챙기게 됐다.
● 1500억 주식부자, 월급은 회사 환원, 법인카드도 없어
오준호 CTO가 연구원들과 함께 회사 주요 제품인 4족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레인보우로보틱스 주식 절반을 갖고 있는 오 교수는 이제 3000억 원짜리 회사의 최대 주주로 주식 가치를 환산하면 그의 재산이 1500억원에 달한다. 그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아직 보호예수 기간에 걸려 주식을 팔려고 해도 현금화할 수 없어요. 더욱이 대주주에겐 주식이 회사를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현금화하기 어렵습니다. 대주주가 주식을 팔면 누군가 M&A(인수합병)하지 않겠어요?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이 신이 났지요.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4년 전에 지분 5%를 직원들에게 거의 공짜로 나눠 줬어요. 공모 전 주식 액면가로 줬는데 시가(時價)로 치면 200~300억원 가량 될 겁니다. 임원 말고 직원들은 평균 2억원 쯤 혜택을 받았을 겁니다. 기업공개 땐 우리사주 몫 2%를 30% 할인된 가격으로 직원들에게 주고 투자금 70%는 대여금으로 융자해줬습니다. 30억원을 챙긴 임원은 ‘먹튀’한 경우도 있었지요.”
레인보우로보틱스엔 회식(會食) 문화가 없다. 이러다보니 회계상 처리하는 ‘회의비’ 항목도 없다. 골프와 술을 하지 않는 오 교수는 법인카드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일을 하다가 늦으면 짬뽕을 시켜먹는 정도라고 한다.
“제가 대주주인데 회사에 돈 들어왔다고 챙기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돈을 챙기면서 다른 임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희생하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저는 기술 자문만 해주는 정도로 역할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회사 통장을 보거나 회계 보고를 받은 적이 한번도 없어요. 인사 문제에도 일절 간여하지 않습니다. 경영 재무 인사에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아요. 외부에서 투자금을 받기 전엔 월급도 한 푼 받지 않았어요. 4,5년 일하니 월급으로 5억~6억 원 정도 쌓였어요. 회사에서 넣어준 퇴직연금 2억5000만원도 나중에 회사계정으로 넣었어요. 우리 회사는 판공비나 접대비가 없습니다. 내가 희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라면 안되지요.”
● ‘자신에 정직하지 않으면 스스로 망한다’
오준호 CTO가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인근에 자리 잡은 레인보우로보틱스 본사 1층에서 휴보와 함께 섰다. 이훈구 기자
오 교수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휴보’를 만들 때부터 모든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을 지배하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물건은 사올 수 있지만 기술을 장악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른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고 본다. 기술을 개발하고 내재화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계약이든 연구용역을 받든 고객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뻥튀기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무척 싫어합니다. 저는 ‘세계 최고’라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 얘기합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창업이 쉬운 게 아니지만 결국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실과 근면 정직이 바탕이 되고 여기에 창의력이 더해지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국밥집을 해도, 택시기사를 해도 성실하고 근면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인테리어나 도배업을 해도 성실하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지요. 게으르고 정직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하지 않다는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서 환경이 따라주지 못했다고 푸념하지만 사실은 내부 요인에 의한 것입니다.”
오 교수는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다. 2015년 다르파 챌린지 수상금 200만 달러 중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1억원을 한국로봇학회에 기부해 미래의 과학 꿈나무에게 매년 ‘오준호기술상’을 수여하고 있다. 복지회 등에 월 5만원, 호스피스재단에 매달 10만원을 꾸준히 기부한다. 정치후원금으로 10만원, 100만원을 할 때도 있다. 평소에 하는 잔잔한 기부도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큰 기부를 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세금 내고 자식 물려줄 바엔 재산 기부할 것”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청년들이 성실하고 근면하면 어떤 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이든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카이스트
“대주주로서 회사를 키우고 가치를 높이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곤 직원과 사회 학교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할 생각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끝인데, 세금이나 자식에게 넘겨줄 바엔 유용한 곳에 쓰이면 좋겠지요. 우리 청년들이 어렵다 힘들다 그러는데, 우리 세대는 훨씬 어려웠어요. 이태리식당 즐겨 찾고, 1년에 한번 해외여행 다니고, 젊을 때 좋은 차를 사고, 주변 환경과 입지 좋은 집에 사는 것을 우리 세대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선 한심해 보이는 직원이 행복해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같은 곳에 가보면 1960년대 서울 청계천 같은 곳에 사는 아이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아요? 월급 100달러 타려고 아등바등하다가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요. 한국에선 성실 근면 정직하면 누구나 성공합니다. 도대체 ‘헬 조선’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 본사 옥상에 위치한 오준호 CTO의 천문대. 밤에 천문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취미다. 회사 매출에도 적지 않게 기여하는 제품이다. 이훈구 기자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