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유별난 경험이다. 지난주 내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9일 ‘낙상(落傷) 사고’를 놓고 거의 재난사고 수습을 하는 모습이었다.
12일 선거대책위원회 ‘배우자 실장’이라는 이해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흘 전 김혜경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CCTV 캡쳐본을 공개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이 후보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담요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까지 손을 잡았다.” 1963년생으로 환갑이 내일모레인 그가 페이스북에 쓴 설명이다. 국회의원답지 않게 오글거리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이고, 영어로 하면 TMI(Too Much Information)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가 후송된 구급차 내부 CCTV 캡처사진
13일 저녁 이재명은 옥계해수욕장에서 진행한 ‘명심 캠프’ 토크쇼 도중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때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잖아” “그건 누가 일부러 한 것” “딱 그게 몇 시간 만에 전국에 카톡으로 뿌려지고 그랬잖아”라고 대화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가짜뉴스’ 통제를 하는 듯했다.
● 의원이 왜 후보 부인을 시중드나
민주당은 이미 11일 김혜경의 사고 관련 가짜뉴스를 퍼뜨린 2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그러고도 같은 날 서영교 등 현역의원 무려 5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 씨의 부상을 둘러싸고 악의적이며 의도된 조직적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국민을 겁박했다.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과 신현영 의원이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부상과 경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 사실이 내게 놀라운 이유는 이들이 혈세로 봉급받는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꼬붕도, 대통령 부인의 꼬붕도 아닌 국민의 대표다.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가 1억 5000만 원이 넘는다. 의원은 입법부에 속해 있고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그럼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배우자일 뿐이다. 통상 대통령비서실에서도 대통령 부속실은 ‘비서실 안의 비서실’로 불린다. 그 중 제2 부속실이 대통령 부인을 챙기는데 주로 의전을 담당한다. 대통령 부인에게 무슨 법적 지위나 역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 삼권분립 무너진 이 더러운 개천
심지어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후보, 그것도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를 담당하는 직책으로 ‘배우자 실장’이 생겼다는 건 금시초문이다(대개 팀장급에서 한다). 여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통령 부인에게 특별한 지위나 책임, 역할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의원이 그 일을 한다는 건 삼권분립이 통곡할 일이다.
미국선 현직 의원이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은 해도 선거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일하진 않는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다. 세비를 국회에서 받는데 남의 선거캠프에서 일한다는 건 국민에게 미안한 일이다. 더구나 후보 배우자 밑이라니 ‘내시’를 자처하는 일 같지 않은가.
● ‘쥴리’는 상관없다, 내로남불이 문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측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부인 김건희 씨는 아직 국민 앞에 등장하지도 못했다. 한동안 ‘쥴리’를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2012년 그가 윤석열과 결혼하기 전 사생활에 대해선 1도 관심 없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부인 김건희 씨. 동아일보DB
그가 결혼한 다음 대학 임용을 위해 경력을 허위로 써냈다거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연루된 의혹은 반듯이(그리고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조국 사태 때 분노했던 2030이 “조민과 김건희가 다른 게 뭐냐”며 마음을 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이치모터스는 특히 돈 문제여서 개운치 않다. 청와대 안주인이 만에 하나, 돈에 관심 많다면 큰 문제여서다.
사랑에 눈 먼 윤석열으로선 죽어도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부인 리스크 소리가 계속 나온다는 건 윤석열이 이미 ‘폭탄 조끼’를 두르고 있다는 얘기다. 3월 10일 “배신자” 소리 듣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남자답게 털어내기 바란다. 윤석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다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
● 대통령에게는 처가가 원수다
국정원장인 정치9단 박지원은 한때 “권력은 측근이 원수,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는 명언을 날렸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사(史)를 돌아보면 대통령 부인과 자식, 처가 때문에 생긴 문제가 대통령 얼굴을 못 들게 했다. 측근 비리는 차라리 나중 문제였다.권양숙 씨를 인터뷰한 2002년 11월 30일 동아일보 지면
그랬던 권 여사도 태광실업 박연차로부터 뇌물과 시계를 받는 바람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몰락시킨 것도 대통령 처남이 표면상 대주주였던 그놈의 다스였다. 여성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은 자신의 옷차림까지 챙겨준, 남자로 치면 처가 식구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 대통령 부인의 불행을 반복하지 마시라
건국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을 기억하는가. 19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장영자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였다. 전두환도 처삼촌의 구속까지는 막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로선 어마어마했던 거금 1억원 수뢰가 드러나 박철언(당시 정무수석·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의 건의에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박철언도 6공화국의 황태자로 군림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 몰락하고 말았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박철언을 구속한 ‘모래시계 검사’가 바로 윤석열과 자웅을 겨뤘던 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였다(물론 박철언은 터무니없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대통령 처가와 피붙이는 대통령의 폭탄 조끼와 다름없다. 그래서 대통령 부인은 더욱 단단한 마음과 태도가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는 안 그러한가.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지금 태국 아닌 청와대에서 지내고 있다. 대통령의 사위, 그리고 타이이스타젯항공과 이상직에 얽힌 미스터리는 문 대통령 퇴임 뒤 누군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 후보 때부터 예비 대통령 부인은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황후마마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에 걸맞게. 취임하면 특별감찰관의 감시와 견제를 받으며. 그리하여 다시는 대통령 부인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