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리비아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가다피의 아들이 12월로 예정된 리비아 대통령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히고 선거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했다.
세이프 알이슬람이 대선 출마 서류를 남부 사바시에서 제출했다고 이날 리비아 선거위가 보도문으로 말했다.
가다피는 27세 소령으로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며 42년 후 2011년 아랍의 봄 민중봉기 때 도주 중에 10월 살해됐다.
리비아는 가다피 피살 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했으나 세력 다툼으로 중앙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빠졌다. 의회 중심 기득권 세력들이 동부 벵가지 쪽으로 탈주해 의회 정부를 세웠다. 양쪽은 2014년부터 무력 충돌을 벌이곤 했다.
이후 리비아는 서부 트리폴리의 이슬람주의 민병대 중심 서쪽 정부와 벵가지의 동쪽 의회 정부 두 곳으로 분열되었다. 유엔 중재로 2016년 파에지 사라지 총리의 통합정부가 트리폴리에 세워졌지만 동쪽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쪽 정부에서는 대신 칼리파 히프테르(하프타르) 장군이 자신의 군사 조직을 국민군으로 만든 뒤 서쪽 정부 타도에 나섰다. 리비아의 남부 유전과 북부 시르테 등 항구가 어렵게 석유를 생산하고 수출했으나 칼리파는 이를 봉쇄하기도 했다.
히프테르는 2019년 4월 서쪽 수도 트리폴리 공략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양측은 그 해 하반기부터 평화 협상에 나섰고 지난해 10월 휴전했다. 이때 1년 뒤에 선거를 치르기로 했으며 올 3월에 실업가인 압둘 하미드 드베이바를 총리로 한 선거관리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한편 리비아 북쪽 항구들은 2013년 후반부터 이탈리아 남단 섬으로 상륙해 유럽에 무작정 이주하려는 아프리카인 및 중동, 서남아시아인의 출발지가 되었다. 이 루트가 2015년에 터키-그리스 루트로 대체되었으나 터키가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을 받고 이주 시도를 강력 단속하자 2016년 후반부터 다시 리비아-이탈리아 루트가 살아났다.
유럽 여러나라들이 리비아 정부에 이들의 단속을 요구했지만 효과가 없었으며 리비아에는 유럽 이주시도 인구가 쇄도하면서 이와 함께 이들을 밀반입시키는 불법 조직이 번성해 있다. 또 리비아 당국에 의해 바다에서 단속돼서 끌려와 억류된 이주시도자에 대한 고문, 강간 등이 폭로되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