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인류 진화의 종착역일까?
미셸 푸코의 말처럼 ‘인간은 최근의 발명품’이며, 이제 그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가 ‘호모 사피엔스’와 공생하는 시대가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세원 교수의 신간 ‘포스트 휴먼의 초상’(미다스 북스)은 SF영화 속 장면을 통해 현 인류보다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진화 인류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담은 책이다.
포스트휴먼의 시대는 인간 자신과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대격변의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래에 적응하려면 고착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낯설고 이질적인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논의를 ‘SF 영화’를 통해 제시한다. 인간을 가장 우월한 존재로 간주해온 근대 휴머니즘과 자체 진화를 주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 탈인간중심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을 비교하고 인공지능, 리플리컨트, 사이보그, 복제인간, 로봇 등 SF영화에 등장하는 탈인간적 존재들을 살펴봄으로써 미래 인간의 조건을 짚어본다.
1부에서는 로봇의 기원인 오토마타와 인간과 기계의 조합 사이보그, 인공지능의 역사를 살펴보고 유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주장을 살펴본다.
2부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립을 처음으로 그려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작)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공지능컴퓨터 할9000부터 2020년 시즌2가 제작된 드라마인 ‘얼터드 카본’의 타케시 코바치까지 지난 50여년 간 제작된 주요 공상과학영화속의 캐릭터를 분석했다. SF영화가 그려내는 미래사회의 초인공지능은 인류에 위협이 되거나 공존이 가능한 두 가지 양상으로 그려진다. 첫째는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능력과 물리력을 지닌 초인공지능이 인간들에 대한 살인 혹은 대량 학살을 자행할 것이라는 예견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노동에서 해방시켜주었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생활 곳곳에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인간과 기계의 엄격한 변별점은 모호하게 되었다. 이성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부여받았던 인간은 이성적 판단까지 가능해진 기계의 진화로 기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지켜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술발달 속도가 가속화될수록 인간이 미래에서 추방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현 인류의 종말과 트랜스휴먼의 등장 그리고 아직 그 모습이 흐릿한 포스트휴먼의 모습을 조금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상상하고 예측하는 ‘진화인류’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미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더 예리하게 느끼고 깊게 사유할 수 있다.
“인류 진화의 긴 여정을 돌이켜보면, 사실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던 시기에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데니소바 같은 다양한 계통의 인간 종이 있었지만 대부분 멸종하고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계통만 살아남아 오늘날의 인류로 진화했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겠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 진화의 종착역은 아니다.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