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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밀어내기’ 루카셴코, EU 제재에 ‘하이브리드 전쟁’ 반격

입력 | 2021-11-16 03:00:00

“폴란드가 난민수용 거부 인권침해”… 갈등 유발하고도 ‘책임 떠넘기기’
“러 공급 유럽행 가스관 차단” 협박… 팬데믹 상황서도 아이스하키 열중
“코로나엔 스포츠-사우나가 효과적”… 황당한 조언하다 확진 판정 받기도




최근 ‘난민 밀어내기’를 통해 대포 한 방 쏘지 않고 동부 유럽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7·사진)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7년째 벨라루스의 권좌를 지키며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그가 고도의 ‘회색지대(Gray Zone) 전략’과 ‘하이브리드(Hybrid) 전쟁’을 구사하면서 유럽연합(EU)의 제재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동 출신 난민이 폴란드 등 EU 국가로 월경하는 걸 루카셴코 대통령이 조장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벨라루스를 지원하는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서방의 무력 대치로 비화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시킨 가운데 12일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 4개국이 흑해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벌였고, 13일에는 러시아가 노르웨이해 등에 Tu-160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띄우자 영국이 전투기를 맞출격시켰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움직임을 ‘회색지대 전략’이라고 본다는 서방 관리들의 시각을 전했다. 무력을 쓰지 않고 점진적으로 안보 목표를 달성하는 이 전략은 ‘괴롭지만 총칼로 맞받아치기는 어려워서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상대를 몰고 간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최근 자신을 비판하는 폴란드를 향해 “폴란드가 난민 수용을 거부해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받아치면서 “당신들이 나와 벨라루스에 제재를 가했는데 내가 이주민(난민)들에게서 당신들을 보호해주길 원하는가”라고 했다.

다양한 유형의 싸움이 혼재된 ‘하이브리드 전쟁’ 역시 루카셴코 대통령의 싸움법을 설명해주는 용어다. EU가 추가제재를 예고하자 루카셴코 대통령은 벨라루스를 경유해 EU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을 잠그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우리가 유럽에 난방을 제공하는데도 그들은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한다”며 “경망한 유럽 지도부는 말을 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라”고 했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가스관을 잠그면) 러시아와 한 가스 수송계약 위반”이라고 했지만 EU로서는 ‘때리는 사람보다 말리는 사람이 더 미운’ 상황이다.

‘아이스하키광’인 루카셴코 대통령은 최근 직접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자신은 난민 사태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메시지를 던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3월에도 그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하면서 “스포츠가 최고의 바이러스 치료제다. 굴복하며 사느니 당당히 죽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벨라루스 국민에게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보드카를 마시고 일주일에 두 번 사우나를 가라”고 조언해 국제적 조롱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자신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구소련 붕괴 뒤 벨라루스 부패방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루카셴코는 1994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다.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8월 대선에서 부정 선거 논란 속에 80% 이상의 득표율로 6선에 성공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