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 3분기 사업 보고서 분석
원재료 가격 상승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다. 자동차, TV, 가전제품, 디스플레이 등 한국 수출 주력 제품들의 원재료 가격이 지난해보다 많게는 2배 가까이로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까지 오를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영 불확실성에 휩싸인 상태다. 비용(Cost), 공급망(Chain), 통화(Currency) 유동성 등 ‘3C’ 관리가 기업의 향후 실적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6일 동아일보가 3분기(7∼9월) 국내 주요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한국 10대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와 선박, 철강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선박 제작에 주 재료인 스틸플레이트는 지난해 평균 가격과 비교해 올해 1∼9월 평균 가격이 2배 가까이로 상승(93.7%)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산업의 원재료인 철광석(55.0%), 석탄(35.4%) 가격도 올랐다.
올해 초부터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를 톡톡히 봤던 가전·전자제품 관련 산업도 원재료 폭등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LG전자는 15일 사업보고서를 통해 철강(24.6%)과 레진(합성수지·21.2%) 가격이 올랐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는 TV 재료 중 30% 이상을 차지하는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이 68% 올랐다고 밝혔다. 디스플레이의 핵심 원재료인 전기아연도금강판(EGI)은 82.9% 올랐다.
원재료 가격 상승은 결국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TV 제품 가격은 29%가 비싸졌고, LG전자 에어컨은 9.6%, 현대차 승용차는 13.8% 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제품 가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물류비용 등도 올해 크게 상승해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물류량과 금액 등을 모두 반영하는 중국컨테이너운임지수(CCFI)는 지난해 10월 1058에서 올 2월 2063으로 올랐는데, 올해 9월에는 3174까지 상승했다.
내년 경영 전략을 수립 중인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원재료, 물류 등 비용(Cost)도 문제지만, 미중 갈등 및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차질 등으로 공급망(Chain)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SK하이닉스는 분기보고서에 “차량용 반도체, 태양전지 등 관련 산업의 수급 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원소재 생산지 다변화 등 사전 대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보고서에 ‘반도체 수급난’을 9차례나 언급하며 어려움과 대응방안을 설명했다. 지난해와 2019년 보고서에선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손실보상금 등 돈을 풀어왔던 각국 정부가 돈줄을 죌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점도 변수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시작으로 각국이 재정정책을 통해 돈줄을 죄거나, 통화정책으로 금리를 올리는 등 통화(Currency) 유동성에 변화가 오면 환율 및 금리 변수가 기업 매출과 이익에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COVID-19)라는 기존의 ‘C’ 리스크에 적응한 대신 새로운 ‘3C’리스크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이 같은 변수에 대응하는 준비와 역량이 기업의 실적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