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태프트 협약’은 본래 없어…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 아는 체하며 남 탓이나 해서는 역사의 돌파구 마련하지 못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얼마 전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거론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없다.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해서 검정고시나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는 국사 정도로는 알아지지 않는다. 1905년 일본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국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서명한 문서는 협약(pact)이나 협정(agreement)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주고받았음을 ‘서로 확인한 비망록(agreed memorandum)’에 불과하다.
이 비망록은 서명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에 가서야 타일러 데닛이라는 학자가 우연히 발견해 ‘비밀협약(secret pact)’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라고 과장했다. 그러나 태프트 장관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電文)의 제목 자체가 비망록일 뿐만 아니라 1959년 레이먼드 에스더스라는 학자가 데닛이 밀약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뺀 전문 내용들을 복원해 비망록임을 밝혀냈다.
이 후보는 오소프 상원의원에게 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이 미국 탓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쓰라-태프트’ 얘기를 꺼냈다. 물론 학자들이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해서 당시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은 현상(現狀)의 변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었어도 일본에 의한 조선 보호령화는 진행됐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쓰라-태프트 비망록’ 2개월 뒤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다. 조선에서 일본의 특수 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조약의 주된 내용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조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일본 외의 특정한 나라를 탓하기는 어렵다. 당시는 약소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는 걸 세계 평화의 선결 과제로 보던 시대였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가치를 위해 자국의 희생을 감수하게 된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부터다. 미국은 1950년 한국에서도 3만7000명의 자국민을 희생하며 싸웠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고립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히 자국 위주의 현실적인 정책을 폈다.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열강이 자국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던 시대다. 가까운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위해 싸운 사실은 다 건너뛰고 돌연 다른 시대로 돌아가 자신도 국민 대부분도 잘 모르는 역사 문서를 들먹이며 미국 탓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우리가 보기에도 황당한데 미국 상원의원의 눈에는 얼마나 황당하게 비쳤을까.
오늘날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 중 하나로 급부상한 데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장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