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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한일관계, 1998년 DJ-오부치 파트너십 선언때로 돌아가야”

입력 | 2021-11-17 03:00:00

가와무라 다케오 前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인 가와무라 다케오 전 의원이 2일 본보와 인터뷰하며 “일본은 과거를 잊으려 하고,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한다. 1998년 일한(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때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중의원 선거 불출마로 31년간 몸담은 정계를 은퇴했다. 인터뷰 장소인 도쿄 중의원회관 의원실은 이삿짐 정리로 어수선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중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다음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런 만큼 일한(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본다.”

8년간 일본의 초당파 한일 양국 의원 외교 단체인 일한(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지낸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79) 전 중의원 의원은 2일 도쿄 중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이뤄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83년 일본 총리로서 처음 한국을 방문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한 인물이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때 일본 외상으로 있으며 합의 실무를 총괄했다. 가와무라 전 의원은 기시다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가와무라 전 의원은 1990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3구에서 처음 당선된 이후 내리 10선을 했다. 2003년 문부과학상, 2008년 관방장관을 지내며 정부 요직도 거쳤다. 집권 여당인 보수 자민당 내에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한국을 잘 아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일 관계가 개선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정치인이다. 한국 측에서 일본 총리관저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할 때 가와무라 전 의원에게 은밀히 연락했다. 그 정도로 한국 측에서 볼 때 ‘신뢰할 만한 사람’인 것이다.

가와무라 전 의원은 지난달 31일 중의원 선거에 불출마하며 정계를 은퇴했고, 그 후 첫 언론 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다. 인터뷰 당일 그는 비서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짐을 빼고 있었다. 골판지 상자가 복도에까지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원로 입장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언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당초 예상과 달리 단독으로 과반(233석)을 넘어 절대 안정 다수 의석(261석)까지 확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치러지는 첫 국정 선거여서 좀처럼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당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국민들은 ‘애프터 코로나’ 이후 사회 재건을 위해 안정된 정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왜 불출마했나.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을 포함해 몸담고 있는 의원연맹이 많다. 그래서 한 번 더 출마해 각 연맹의 후계자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려 했다. 하지만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참의원 의원(자민당 소속)도 같은 지역구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보수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포기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가와무라 전 의원은 약 400개 의원연맹에 참여했고 그중 100여 개 단체에서 회장이나 간사장을 맡고 있었다.

―기시다 정권에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나.


“기시다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중 나카소네 전 총리 다음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지금은 외상 재임 당시(2015년) 맺었던 위안부 합의를 한국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고, 한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 과정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주변국 외교를 중요시해 온 자민당 내 파벌 고치카이(宏池會) 소속이다. (일한 관계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기시다 내각은 일미(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일미한(한미일) 협력을 강화해가며 아시아에 주축을 둔 외교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일중(중일)도 무역 등 상호 의존이 매우 높다. 미중이 긴장관계에 있지만 그 가운데 윤활유로서 일본은 아시아 외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는 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로 얼어붙었다.

“1965년 일한(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초해 해결해야 한다. 최근까지 대위변제(代位辨濟)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일한 관계 개선의 큰 실마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위변제는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들을 대신해 한국 정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이를 나중에 일본 기업에 청구하자는 것이다. 2019년 11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일본 와세다대 강연에서 대위변제 형태의 해결책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10월 6일 주일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도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위변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강창일 주일 대사는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내 해결될 수 있을까.

“(일본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문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 한반도에서 가져간 문화재 반환식이 1996년 한국에서 열려 이를 준비하며 방한했다. 그때부터 일한 관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정치 스승인 다나카 다쓰오(田中龍夫) 전 문부과학상이나 10년간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 일한 관계에 애썼던 정치 선배들의 영향도 받았다.”

―31년의 일한의원연맹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5년 6월 일한(한일) 수교 50주년 행사가 서울,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다. 각 행사장에 양국 정상을 참석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행사에 참석하면 자신도 도쿄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유흥수 당시 주일 대사가 박 대통령 참석을 이끌어냈고, 그걸 아베 총리에게 보고해 아베 총리도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그해 12월 위안부 합의도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아베 전 총리는 한국에서 강경 우파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선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아베 전 총리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출신이다. 선거구에 한국인도 많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도 일한 관계에 열성적이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아베 전 총리도 일한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으로서 아쉬웠던 것은….

“양국 간 접점이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과거를 잊고 미래지향적으로만 가려고 한다.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한다. 양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의 1998년 ‘일한(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때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한 관계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므로 여러 교류를 통해 인간관계를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더 이상 의원이 아니니 일한의원연맹에서 직접 활동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민간 조직인) 일한친선협회중앙회 회장이기도 하다. 앞으로 측면에서 의견을 전달하며 지원하고 싶다. (연맹이) 잘못한다 싶으면 주의도 주겠다. 일한 관계 개선을 위해 확실히 조언하는 역할을 하겠다.”

가와무라 다케오 전 의원△ 1942년 야마구치현 아부군 출생
△ 1967년 게이오대 상학(商學)부 졸업
△ 1976년 야마구치현의회 의원 첫 당선
△ 1990년 중의원 의원 첫 당선, 그 후 10선(選)
△ 2003년 문부과학상(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 2008년 관방장관(아소 다로 내각)
△ 2013년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 2021년 10월 정계 은퇴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