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넘어 시해… 생각보다 간단” 골동품 시장서 나온 편지 진품 판독 전문가 “사건 세부 해명하는 열쇠… 현역 외교관이 시해 관여 충격적”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시해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 일본 지인에게 보낸 편지. 그는 이 편지에서 당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1895년 10월 8일 고종의 비 명성황후(1851∼1895)를 암살한 사건에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사건 다음 날 “우리들이 왕비를 죽였다”며 당시 정황을 자세하게 밝힌 편지가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호리구치는 “진입은 내가 맡은 임무였다. 담을 넘어 (중략) 간신히 오쿠고텐(奧御殿·귀족 집의 안쪽에 있는 건물)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고 밝혔다. 또 “생각보다 간단해 오히려 매우 놀랐다”며 자신의 감상까지 덧붙였다.
을미사변으로도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1895년 10월 8일 일본 육군 중장 출신 미우라 고로(三浦梧櫻) 당시 공사의 지휘로 일본 군인, 외교관 등이 경복궁을 기습해 명성황후를 암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사건이다. 하지만 1876년 일본에 유리하게끔 맺은 강화도 조약으로 당시 살인범들에게 조선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았다. 사건 다음 해인 1896년 1월 일본 육군 장교 8명은 일본 군법회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호리구치 등 48명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석방됐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