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이순재
공연계 ‘리어왕’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뜸했던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올해 초부터 영상, 연극, 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 대관 일정, 제작진의 작품 선택, 배우 캐스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연의 특성상 리어왕 소재 작품이 유독 올해 쏟아져 나온 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무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 사회의 리더십 갈증 속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으려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려는 관객들로 리어왕이 군림하는 공연장은 북적댄다. 연극 ‘리어왕’의 한 관객은 “내가 바라는,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때야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NT LIVE’ 리어왕 이언 맥캘런.
지금 가장 뜨거운 리어왕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이순재 표 리어왕이다. 이순재는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차 전 공연에서 홀로 역할을 책임진다. 최근 인기에 힘입어 공연 8회차를 연장해 12월 5일까지 특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리어왕’ 이순재
16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드레서’에도 리어왕이 등장한다. 선생님 역으로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는 송승환이 극 중 극 형태로 리어왕을 선보인다. 지난해 예정됐던 공연은 팬데믹으로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더 드레서’ 송승환.
내년에도 리어왕은 계속된다. 국립창극단은 우리의 소리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창극 ‘리어왕’을 내년 3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고전 중 하나를 택해 창극으로 풀어내려던 제작진은 논의 끝에 리어왕을 택했다.
작품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리어왕은 이름과 명예만 챙겨 호기롭게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결국 권력을 놓지 못해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며 “리더가 물러날 때를 알고 물처럼 흘러가야 하지만, 그걸 거부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고 했다. 이어 “작품은 넓게 보면 세대갈등과 인간 존재가 소멸하는 이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극장 홍보를 담당하는 차경연 PD는 “권력 뒤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다. 여러 ‘리어왕’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건 간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