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가 동네북 신세가 됐다. 나라 곳간을 여는 문제를 두고 여당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해체론까지 거론된 것도 모자라 초과세수 고의 축소 의혹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핵심 공약인 이른바 ‘3대 예산 패키지’의 실현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해서는 재정 당국의 협조가 중요한데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모양새가 기재부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정부가 올해 초과세수를 의도적으로 적게 예측했다는 여당의 의혹 제기에 “제가 몇 차례 말한 것처럼 공직자들이 그렇게 일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당 측에서 고의성 등을 언급하는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도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고의로 초과세수 전망치를 숨기려고 했던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기재부는 “세수예측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의도적인 세수 과소추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예측치는 이미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 15일 여당에 설명했다고도 전했다.
기재부의 해명에도 이재명 후보 측과 여당에서는 질타를 이어갔다. 이재명 후보의 3대 예산패키지에 대해 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반대했던 기재부가 초과세수 추계 오류를 저지르며 명분을 제공한 셈이 됐다.
이를 빌미로 이재명 후보 측과 여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역지원금 등을 더욱 거세게 밀어 붙일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세수 예측 오류와 관계없이 초과세수 분을 전 국민 지원금 예산으로 쓸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수차례 추경과 경제 대응책을 고심하느라 살인적인 업무강도를 감내했던 기재부 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크게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한 공무원은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주말도 반납해야할 때가 많았지만 공직자로서 사명감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요즘처럼 정치권에 끌려 다니면서 ‘까라면 까라’는 식이라면 공직생활에 회의감이 든다”며 “기재부 위상이 이것밖에 안되나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재부 공무원은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 지출이 있었고, 향후 몇 년 동안에도 확장 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참에 정부의 재정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각 당에서 내세우는 예산 사업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