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극 시즌2〈1〉임대주택 정책 ‘똘똘한 한 채’ 꿈꾸는 20대 미혼 “임대 살며 돈 모아도 집값 더 올라… 정부 믿다간 자산 격차만 벌어져” 양질 임대주택 원하는 30대 가장 “외벌이 가장에 공공임대 큰 도움… 집값 고민 대신 꿈 실현위해 도전”
부동산 정책 ‘극과 극’ 두 청년의 대화 무주택자라는 공통점을 빼면 닮은 것이 없는 김진완 씨(32)와 정연웅 씨(26)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연웅(26): 무주택자. 다큐멘터리 촬영 스태프. 미혼. 서울 강남 출생. 수입 80%를 저축해 현재까지 7000만 원 목돈 마련.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29.8m² 오피스텔 매입 추진 중. 서울에 똘똘한 내 집을 마련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인생 목표.
무주택 청년인 진완은 “요즘 아파트는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했다. 작품 한 점을 두고 서로 질세라 수억 원, 수십억 원을 외쳐대는 명화(名畵) 경매 현장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다. 진완은 “이제 부동산 시장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연웅은 “그중에는 내가 살 수 있는 그림도 있다”고 응수한다. 그림 보는 눈을 키우면 언젠가는 명화를 발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무주택자인 것 말고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청년이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청년 안전망” vs “자산 격차 벌리는 미봉책”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매수를 준비 중인 무주택 청년 정연웅 씨(왼쪽)와 경기 성남시 LH행복주택에서 부인, 아이와 함께 사는 김진완 씨가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공공 임대주택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연웅=저는 로또를 바라지 않아요. 제 수준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사서 늘려 나가면 되죠. 저는 모아둔 돈 7000만 원에 부모님이 조금 보태주시고 대출까지 받으면 서울 마포구에 1억8000만 원짜리 오피스텔은 살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이거라도 사려고요. 공공 임대주택이 늘어날 거란 정부 말만 믿다가는 빈털터리 돼요.
▽진완=결국 부모 자산이 있어야 하네요. 대출 끌어 받아도 부모 자산이라는 ‘플러스알파’가 없으면 집 못 사요. 저처럼 부모한테 한 푼도 못 받고,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건 전세 사기당하는 일이에요. 임대주택에 살면 최소한 사기당할 일은 없잖아요.
▽연웅=공공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해요. 다만 이게 청년을 위한 해결책이냐는 거죠. 저라면 공공 임대주택 살면서도 불안할 것 같아요. 당장은 집이 필요하니 임대주택에 들어가겠죠. 살아 보니 대출받을 필요 없고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니까 10년, 20년 거기서 안주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 집값은 가만히 있을까요? 임대주택에 살며 아껴서 돈 모아도 집값은 그보다 더 오를 거예요. 정부가 임대주택 지어 준다는 말만 믿고 안주하다가는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요.
○ “4인 가족 살 수 있게” vs “누가 열심히 살겠나”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연웅=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라고 보세요? 지금도 서울 도심에 임대주택 지으려 하면 주민들이 결사반대부터 외쳐요.
▽진완=쉽지 않겠지만 추진해야죠. 저처럼 아이 둘에 외벌이하는 가정에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무리해서 집 사면 빚 갚느라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 해요. 아내가 원한다면 모를까 억지로 떠밀고 싶진 않아요. 맞벌이하면 두 아이는 누가 키우나요. 공공 임대주택이 정말 필요한 건 저 같은 4인 가구예요. 이런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해야죠.
○ “대출 풀어야 집 살 기회” vs “빚 갚다 가정 흔들”
▽연웅=정부는 공공 임대주택을 줄 게 아니라 열심히 사는 청년들한테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고 합리적인 가격에 아파트 분양해서 집을 살 기회를 줘야 해요.▽진완=결혼할 때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 샀다가 이혼한 지인이 있어요. 빚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요즘 수도권 아파트는 8억 원이 기본인데 대출 규제를 풀어도 문제예요. 5억 원 가까이 대출받아 놓고 어떻게 감당할 거예요? 먹고살자고 구한 집인데 집 때문에 제대로 먹고살지도 못하고 이혼까지 하는 게 현실이에요.
▽연웅=당장은 빠듯하겠죠. 10년 전 저희 부모님이 경기 분당에서 아파트를 4억 원에 분양받았는데 지금 3배로 올라 12억 원이에요. 미래를 생각하면 괜찮은 투자예요. 공공 임대주택에 살면 당장은 여유롭겠지만 30년 뒤 박탈감을 느낄 거예요. 그때 가서 ‘1억, 2억 원대 오피스텔이라도 사둘걸’ 하고 후회할 건가요.
▽진완=30년 뒤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는 청년들도 있어요. 공공 임대주택은 이런 청년들에게 보험이 돼줄 거예요. 지방대 심리학과를 나온 촌놈인 제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배워서 지금은 웬만한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보다 많이 벌어요. 집 대신 저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봐요. 저 같은 청년들한테 집값 때문에 아등바등 살지 않고 꿈을 위해 도전할 기회를 줘야죠.
▽연웅=아뇨. 최소한 어떤 일이 닥쳐도 내쫓기지 않을 내 집이 있어야 도전도 할 수 있죠. 지난해까지 연봉 3000만 원 주는 일반 직장에 다니다가 올해부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그 절반도 못 받으며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요. 2주간 섬으로 촬영 다녀왔는데 나와 보니 기름값이 L당 200원 올랐더라고요. 세상이 그래요. 계속 바뀌어요. 정부도,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집 줄 거야’란 생각은 대책이 될 수 없어요.
1시간 반 넘게 이어진 대화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꿈을 향해 치열하게 일상을 꾸려가는 청년이었다. 진완은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연웅에게 “난 그 나이 때 마땅한 직업도 없었는데 대단하다. 다큐멘터리 촬영 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연웅은 “스타트업 IT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는데 고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같은 답을 했다. 그제야 서로를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정책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 4명의 일대일 대화 내용 전문을 분석한 뒤 이같이 설명했다. 토론자들은 세부 정책에 대해선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였지만 확실한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제에는 모두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토론 참여자 모두 최근 집값 폭등에 대한 피해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심 교수는 “무주택자나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수혜를 입은 고가주택 보유자들도 연봉보다 많은 보유세를 내는 데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조응형 이소연(이상 사회부) 지민구(산업1부)
▽김나현 김선우 오세정 윤유성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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