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e-UP’
김도형 기자
놀랍도록 빠른 확산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는 오랫동안 비싼 차였다. 내연기관차의 엔진·변속기를 전기차는 모터·배터리로 대체한다. 문제는 전기차 원가의 40%까지를 차지하기도 하는 배터리였다. 고용량·고성능 배터리의 높은 가격 때문에 전기차는 비쌀 수밖에 없었다. 빠른 보급을 위해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했던 이유다.
테슬라는 고급 전기차 ‘모델S’의 성공으로 전기차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혔다. 모델S는 비슷한 크기의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싼 가격표를 붙인 차였음에도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각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이런 흐름도 바뀌는 모습이다. 작아서 가격이 싸고 그래서 실용성을 앞세운 전기차의 약진이다. 유럽에서는 주요 완성차 기업이 경쟁적으로 소형보다도 작은 경형 전기차 시장을 키우고 있다. 폭스바겐의 ‘e-UP’이나 피아트의 ‘500 일렉트릭’ 등이 대표적이다. 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2만 유로(약 2700만 원) 안팎인 이들의 시작가격은 보조금을 받으면 1만2000유로(약 1600만 원) 안팎까지 떨어진다. 비슷한 크기의 내연기관차와 충분히 경쟁할 만한 가격이다.
경·소형 전기차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작은 차를 타는 사람은 도심 주행이 주된 목적인 경우가 많다. 차량 자체가 작고 가벼운 데다 긴 주행거리가 필요 없으니 배터리 용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경·소형 전기차가 가진 논리다. e-UP의 배터리 용량은 현대차의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EV’ 배터리 용량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배터리 용량을 줄여 가격을 떨어뜨린 ‘e-UP’의 주행거리는 250km가량이다.
실용성을 앞세운 저가 전기차의 약진은 중국에서도 두드러진다. 미중 합작 전기차 기업 SGMW의 경형 전기차 ‘훙광 미니’는 올해 3분기(7∼9월)까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다. 주행거리가 200km에도 못 미치지만 보조금 없이도 최저 500만 원대에서 시작하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질주다. 이런 전기차는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하다.
전기차 물결이 밀어닥치기 직전까지 내연기관차에서의 큰 유행은 납작한 세단 대신 퉁퉁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는 것이었다. 더 넓은 공간을 누리며 험한 곳도 누빌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세단보다 무거운 SUV는 연료소비효율이 나쁘다. 전기차에는 여전히 전력 공급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성에 이어서 실용성을 강조하는 전기차의 확대는 친환경차다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