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흑인 과잉진압 항의집회서 반자동 소총 쏴 2명 사망-1명 중상 체포 뒤 “신변 위협 느껴 정당방위”… 배심원단, 5개 혐의 모두 무죄 평결 뉴욕-시카고 등 무죄 평결 규탄시위, “흑인 피의자였다면 달랐을 것” 지적 총기규제 반대 보수진영선 영웅시… 지지율 하락 바이든, 또 악재 만나
“리튼하우스는 유죄” 잭슨 목사 시위 주도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18세 백인 카일 리튼하우스에 대한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중절모 쓴 사람) 뒤로 ‘리튼하우스는 유죄다. 미국에 파시스트는 없다’고 적힌 항의 문구가 보인다. 시카고=AP 뉴시스
19일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 법원 배심원단은 2건의 살인과 1건의 살인미수 등 모두 5가지 혐의로 기소된 카일 리튼하우스(18·사진)에게 전부 무죄 평결을 내렸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12명의 배심원단은 사흘 연속 이어진 심리와 이후 26시간의 논의를 거쳐 무죄라고 결정했다.
리튼하우스는 17세였던 지난해 8월 커노샤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의 과잉진압 총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건이 발생한 뒤 항의 시위가 벌어지자 백인 자경단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가 시위 참가자에게 AR-15 반자동 소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체포된 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상황에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해왔다. 약탈과 방화로 시위가 격해지던 상황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경단과 함께 활동하던 중 시위자들이 자신을 때리며 총을 빼앗으려 해 어쩔 수 없이 총을 쐈다는 것이다. 리튼하우스는 재판을 받는 도중 배심원단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검찰은 그가 목표물을 뚫을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풀 메탈 재킷’ 탄환 30발을 총에 장착하고 있었고 총격사건 뒤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데다 그날 밤 현장에서 사람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유일한 사례였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유죄를 주장했다.
1급 살인 등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리튼하우스는 유죄가 인정되면 종신형을 받게 될 처지였다. 그는 무죄 평결이 나오자 변호사를 통해 “배심원단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 자기방어는 위법이 아니다”라면서도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법에 따르면 배심원단 최종 평결에 대해 검찰은 항소할 수 없어 이번 평결은 그대로 확정된다고 CNN은 전했다. 배심원단 인종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백인이지만 리튼하우스 역시 백인이라는 점에서 인종차별 논란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배심원단 최종 평결을 두고 “피고인이 흑인이었다면 결정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희생자 유족들은 “사법 시스템의 실패”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는 무죄 평결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수백 명의 시위 참가자는 “리튼하우스 사건은 아직 안 끝났다” “인종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번 사건은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이 경찰 개혁과 총기 규제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고, 공화당은 평결을 근거로 정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회 분열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은 평결에 대한 취재진 질문을 받고 “배심원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고 나는 이를 존중한다”고만 짧게 답변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