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천지만물은 모두 하늘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당연한 이치이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말 중
하나의 문장을 고르기 위해 무척 고민했다. 소설, 시 등 문학 작품부터 전공서적까지 수많은 책 속 문장이 머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택한 것은 1885년 동학 교주인 최시형이 했다는 ‘이천식천’이라는 말이다. 쉽게 풀이하면 ‘밥은 하늘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쌀이 남아돌아 문제인 지금도 밥이 하늘이라는 말은 유효하다. 바로 한식의 근본이 쌀이기 때문이다. 밥이 없다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김치를, 간장게장을, 나물을,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을까. 우리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한식은 결국 밥에서 출발한다. 30대 초반 한식에 매료돼 줄곧 한식에 갇혀 살아 왔다. 내 평생의 업인 한식 공부도 결국 밥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채소, 고기, 바다음식 그리고 발효음식까지 지치지 않고 한식에 대해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근저에 밥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식습관이 밀가루 위주로 바뀌고 쌀 소비량이 역대 최저치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깊숙이 걱정이 되곤 한다. 밥이 사라질 때 한식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밥이 사라지는 건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밥이 하늘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