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살’ 여성 두차례 긴급호출… 경찰, 엉뚱한 곳 수색 시간 허비
A 씨는 헤어진 30대 남성 B 씨로부터 4개월 넘게 스토킹 피해를 당해 왔다. A 씨는 7일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B 씨가 계속 집으로 찾아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너도 같이 죽자”며 협박했기 때문이다. B 씨는 A 씨의 오피스텔 카드 키를 훔쳐 들어가 숨어 있거나, A 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지우며 “신고할 테면 해보라”고 하는 등 A 씨를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 집에서 SOS 보냈는데 엉뚱한 곳 수색
A 씨의 신변보호를 맡은 서울중부경찰서는 A 씨의 집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중부서 경찰관들은 불과 2, 3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었던 A 씨의 구조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A 씨의 1차 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관할인 중부서 대신 바로 옆 남대문경찰서 명동파출소에 출동 지령을 내렸다. A 씨의 스마트워치 위치가 남대문서 관할인 명동 일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은 “통신사 기지국 중심으로 확인하는 112 시스템을 활용해 조회하는 과정에서 명동이 위치 값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명동파출소 경찰관들은 1차 신고 3분 만인 오전 11시 32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이 출동한 곳은 A 씨의 집이 아니었다. A 씨 집에서 450m 떨어진 명동의 한 호텔에 도착해 인근을 수색했다. 당시 파출소 경찰관들은 A 씨가 집 주변에서 스토킹 피해를 당해 신변보호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현행 112 시스템을 통해 신고자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할 경우 오차 범위가 최대 2km에 달한다.
○ 담당 경찰서, 신고 받고도 출동 미적
그 시각, A 씨 신변보호를 담당한 중부서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A 씨가 오전 11시 29분 1차 신고를 하자마자 중부서 112종합상황실과 여성청소년과의 공용 휴대전화에 A 씨의 신고가 접수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신변보호 대상자가 스마트워치의 SOS 버튼을 누르면 담당 경찰과 관할 112종합상황실에 이름과 기지국 정보 등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발송된다.중부서는 A 씨가 오전 11시 33분 2차 신고를 한 뒤에야 A 씨 집으로 출동했다. 4분 뒤인 11시 37분 112상황실에는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주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11시 41분 A 씨 집에 도착했을 때 B 씨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B 씨는 20일 낮 12시 40분경 대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B 씨는 도주하면서 A 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서울 강남의 모처에 버리고, 자신의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 씨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 씨 유가족 측은 “A 씨가 B 씨에게서 위협을 받아 친구들이 수시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고 동선을 파악했다고 들었다. 경찰 대응이 친구들만도 못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 씨의 지인들은 “B 씨가 9일에도 A 씨의 직장에 찾아와 행패를 부려 경찰에 신고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