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살 부실대응 또 드러나 피해여성 두차례 SOS버튼 눌러 1차-1분, 2차-6분 긴급통화연결 경찰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고 드문드문 대화소리가 들릴정도” 1년간 스토킹 시달려 6차례 신고 “피하려고 서울로 이사, 회사도 옮겨”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피살될 당시 경찰이 피해 여성의 스마트워치(위치추적 겸 비상호출 장치)를 통해 범행 현장의 소리를 약 7분간 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A 씨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서울중부경찰서는 A 씨가 112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고도 관할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즉각 출동하지 않았다. 경찰이 범행 현장의 소리를 청취하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늑장 대응해 참변을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피습 현장 소리, 경찰은 듣고 있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19일 오전 11시 29분부터 약 7분간 A 씨와 통화 연결이 돼 있었다. A 씨가 경찰로부터 지급받은 스마트워치의 SOS 버튼을 눌러 자동으로 112 긴급 통화가 연결됐던 것이다. 1차 신고 당시 약 1분간 연결됐지만 곧 끊어졌고, 2차 신고가 이뤄진 오전 11시 33분부터 39분까지 6분간 연결돼 있었다.
1차 신고 때인 오전 11시 29분에 연결된 통화에서는 한 여성이 누군가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오빠,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이때부터 오전 11시 37분 사이 전 남자친구 김모 씨(35)에게 흉기 공격을 당해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오전 11시 37분 한 시민이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경찰과 통화가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피습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1년간 스토킹 피해… 6차례 신고
A 씨는 1년 넘게 김 씨의 스토킹에 시달려왔다. A 씨는 지난해 12월 이후 최소 6차례 김 씨를 신고하는 등 경찰에 지속적으로 불안을 호소했다. A 씨 유가족 측은 “A 씨가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고 올 2월경 회사를 옮긴 것도 김 씨를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방에 살던 지난해 12월 24일 김 씨를 주거침입으로 112에 신고했다. 올 6월 26일에는 “김 씨가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 당시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전이라 김 씨는 입건되지 않았다.
A 씨는 이달 7일에도 “김 씨가 계속 집으로 찾아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당시 A 씨는 “김 씨가 흉기를 들고 온 적도 있다”고 경찰에 알렸다고 한다. 이때도 김 씨는 경찰에 입건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현행범이 아닌 상황에서 강제로 임의동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A 씨가 8일 인근 파출소를 찾았고, 9일에도 “김 씨가 회사로 찾아왔다”고 신고했다. A 씨의 신고가 3일 연속으로 이어졌고, 9일에는 경찰이 김 씨에게 8차례 전화를 거는 등 10차례나 통화가 오갈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A 씨는 범행 전날인 18일에도 담당 수사관과 통화했다. 하지만 신변보호를 담당한 서울중부경찰서는 A 씨가 19일 스마트워치의 SOS 버튼을 눌러 1차 신고한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전송받았을 때 “출동 위치가 관할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
20일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던 A 씨는 결국 하루 전 피살됐다. 경찰은 김 씨가 경찰 신고 등에 앙심을 품고 보복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씨는 22일 구속 수감됐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