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할머니 동성애자들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 사랑은 단지 ‘두 사람’이면 완성된다고 말해주는 프랑스 영화 ‘우리, 둘’.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1] 종부세를 두고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라고 어떤 세무사가 말씀하셨어요. 세계가 부러워할지 안 할지 저는 모르지만, 여하튼 ‘훌륭하고 아름다운’ 세금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아닐까 생각해요. K방역에 이어 K세금까지 나오는 추세라면, 층간소음 흉기난동에 대응하다 현장을 떠난 경찰들의 행위는 ‘K이탈’일 것이고, 그들이 쓸 생각도 못 했다는 전자충격기는 ‘K테이저건’일 것이고, 봉급쟁이들의 유리지갑에서 매달 쏙쏙 빠져나가는 놈은 ‘K갑근세’라 칭해 드려야 마땅하리라는 미친 생각마저 들어요.
하긴, 곰곰이 따져 보면 K드라마엔 유독 ‘K사랑’이 많이 나와요. K사랑? 재벌가의 잘생기고 유능한 청년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야생화 같은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설정 말이에요. 사실 이건, 장기요양보험료가 농어촌특별세에 옆차기를 날릴 만큼 비현실적인 소리예요. 그럼에도 K사랑이 K드라마에 유독 빈번한 이유는, 아마도 사랑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낼 극적인 시추에이션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부자의 사랑은 배부른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시기심에 전 우리의 열등감이 빚어낸 폄하일 뿐이에요. 기본적으로 사람은 먹고살 걱정이 태산이면 사랑에 전념하기 힘들어요. ‘오늘밤엔 어디서 또 자야 하나’를 근심하는 노숙자가 영혼을 불태우는 사랑을 할 수 있겠어요? 치솟는 월세 전세 걱정 없이 하루 24시간 365일 온전히 사랑 타령만 할 수 있으니, 부자의 사랑이야말로 순도 100%라고요! 고3이 수능 치르듯 사랑에 몰입하는 게 부자라고요!
[2] 요즘 제가 즐겨 보는 TV 사극 ‘연모’야말로 K사랑의 총화예요. 기구한 운명 탓에 여성임을 숨긴 채 세자로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왕위에 오르는 이휘(박은빈)가 주인공이에요. 이 여자인 듯 여자 아닌 여자 같은 왕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얽히면서 삼각인 듯 삼각 아닌 삼각 같은 애정 구도를 이루어요. 두 남자는 왕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정지운(로운)과 왕실 종친인 이현(남윤수)인데요. 둘은 하필이면 막역지우예요.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예요. 이휘나 정지운이나 이현이나 먹고살 걱정이 없는 배부른 존재들이었어요. 왕족이거나 양반이거나 부잣집 자식이죠. 시간이 남아도니 정지운처럼 로맨틱한 꽃길도 만들고 붉은 꽃을 왕창 때려 넣은 꽃 편지도 만들어 보내는 거예요. 맞아요. 돈 없고 시간 없으면 진짜 사랑 못 해요. K사랑은 MT(모텔이 아니라 돈·Money과 시간·Time의 이니셜)를 필요충분조건으로 삼는 자본주의의 결정체였단 말이지요!
[3] 이런 의미에서, 지난여름 국내 개봉한 프랑스 영화 ‘우리, 둘(Deux)’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었단 생각이 들어요. 여기엔 서민 아파트 맞은편 집 이웃으로 사는 두 독거 할머니 마도와 니나가 나와요. 이들은 20년간 남몰래 사랑해 온 사이예요. 둘은 로마로 떠나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마도는 장성한 자녀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였으며 이젠 사랑하는 사람과 여생을 보내겠다는 폭탄 발언을 자신의 생일에 하려 하지요. 하지만 자식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차마 진실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한 마도는 며칠 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침대에 누운 채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요. 시도 때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이웃’인 마도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니나의 모습을 마도의 자식들은 의심하고, 결국 니나는 반신(半身)을 쓰지 못하는 마도와 함께 사랑의 탈출을 감행한다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지요.
할머니 레즈비언들을 통해 영화는 말해주고 있어요. 사랑은 성별도, 나이도, 부(富)도, 시간의 문제도 아닌 오직 절실함의 문제일 뿐이라고요. 사랑은, 그저 둘(deux)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젠 지긋지긋한 그놈의 K 타령도 그만하고 싶어요.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