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욱 개인전 ‘Maybe it's like that’
양정욱 작가의 ‘모르는 마을’(2021년). 자전하듯 돌고 있는 뭉툭한 흰 덩어리 2개와 검은색 원 고리 사이로 허우적대는 나무막대 세 개가 보인다. 작가는 “언어를 모르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호함 그 자체일 것”이라고 했다. OCI미술관 제공
전시장 문을 열면 흰 덩어리 2개가 붙어서 빙글빙글 돈다. 한 행성의 3D 버전 같기도 한데, 군데군데 숫자 팻말이 있다. 뒤에 놓인 세 개의 나무 막대는 서로 닿을 듯 닿지 않으며 사방으로 허우적댄다. 작품 ‘모르는 마을’(2021년)이다. 답답함이 몰려오는 이 전시 ‘Maybe it‘s like that’. 제목마저 갑갑하다.
‘모르는 마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아이였다.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만난 양정욱 작가(39)는 최근 아이가 태어났다며 입을 뗐다.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려 해도 명쾌하게 해설할 수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죠. 그런데 이게 전시의 목적인 것 같아요. 우리가 새로운 작품을 보는 건 기존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니까요.” 이를 듣고 나면 ‘모르는 마을’의 흰 덩어리는 자세히 설명하길 포기하고 핵심만 짚어준 상황으로, 막대기는 절묘하게 엇갈리는 생각들로 각각 보인다.
기존에 작품마다 문장형 제목을 붙이고 나무를 주 재료로 써왔던 그는 이번엔 제목을 짧게 정하고 나무 사용도 최소화했다. 양 작가는 “10년 가까이 활동하다 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걸 안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이가 태어나자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첫 아이라 키우는 과정에서 수시로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게 활력이 됐다. 그 느낌을 작업에 소환하고 싶었다”고 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그는 항상 ‘나는 충분히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나?’ 되뇐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배도 고파 보고, 버스도 타는 등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뒹굴어야 작품이 보인다고 한다.
“제가 다루는 주제는 누구나 한 번은 보거나 접하게 될 수 있어요. 그게 예술이 해야 하는 일 같아요. 누군가는 한 번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요.”
12월 18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