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치를 피해 헤어졌다가 82년 만에 재회한 베티 그레벤시코프와 아나 마리아 워렌버그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그레벤시코프와 워렌버그가 서로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은 1939년의 봄이었다. 당시 그 둘은 9살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독일을 떠나기 전에 두 여성은 베를린의 교정에서 눈물로 가득한 포옹을 나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두 여성은 수년 동안 각종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수소문하면서 서로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두 여성 모두 자신의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서로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상하이에 정착한 2만명의 유럽계 유대인 중 하나였던 그레벤시코프는 어린 시절의 친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워렌버그와 가족은 1939년 11월 칠레 산티아고로 피난을 간 이후로 계속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 11월 그레벤시코프와 워렌버그는 쇼아 재단, 플로리다 홀로코스트 박물관 그리고 칠레의 인터랙티브 유대인 박물관(Interactive Jewish Museum of Chile)의 도움으로 줌(Zoom)을 통해 만났다. 두 여성은 모국어인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며 직접 대면 만남을 갖자고 약속했고 1년 후 마침내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었다.
두 여성은 지난 9월 유대 신년인 로쉬 하샤나를 기념하기 위해 그레벤시코프가 거주하는 플로리다주에서 만날 계획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만남을 미뤘다. 이후 11월이 되자 워렌버그는 아들 부부와 함께 플로리다행 여행을 준비했다.
82년 만에 재회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베티 그레벤시코프와 아나 마리아 워렌버그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워렌버그 또한 “두 사람이 82년이 지나도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각자의 남편을 잃은 두 여성은 그간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재회가 이뤄진 4일 내내 떨어지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둘은 서로를 위한 선물도 교환했는데 워렌버그는 그레벤시코프에 칠레 의상을 입고 있는 바비 인형과 함께 워레버그의 사진을 담은 액자 그리고 보석들을 건넸다. 그레벤시코프는 워렌버그에 하트 모양의 작은 조각상을 주면서 자신도 “같은 조각상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한 지난 한 해 동안 그레벤시코프와 워렌버그는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두 여성의 재결합은 쇼아 재단의 직원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상봉을 돕는 다른 단체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줬다.
쇼아 재단의 코리 스트리트 부국장은 “이 두 여성의 재회는 희망의 증거”라며 두 여성의 만남을 보는 것은 “특히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레벤시코프 또한 그 둘의 여정이 “나쁜 경험에서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다가오는 미래에 워렌버그를 보러 산티아고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렌버그 또한 “이런 일이 이뤄질 수 있음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