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당국에 찍히면 사라진다”… 공포의 ‘지정장소 주거 감시’ 시진핑, 반체제 인사 통제 위해 도입 “매년 1만… 1만5000명 실종” 추산
《중국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5년 동안 실종된다. 끝내 나타나지않거나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이런 일이 더 많아지면서 ‘실종인민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중국은 지금 실종인민공화국
사라진 유명인들은 대부분 중국 특유의 재판 없는 구금 제도, 즉 ‘지정 장소 주거 감시(RSDL·Residential Surveillance at a Designated Location)’에 처해진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등 국제 인권단체는 이를 ‘국가 차원의 납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 마윈·판빙빙·덩샤오핑 외손녀사위도 예외 없어
당국에 반기를 든 인물의 실종은 더욱 빈번하다. 소수민족 인권 보호 활동으로 잘 알려진 왕취안장(王全璋·45) 변호사를 포함한 인권운동가 250여 명이 2015년 7월 무더기로 실종됐다. 당국은 2016년 1월에야 왕을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종 3년 만인 2018년 7월 변호사를 처음 접견했다. 실종 약 5년 만인 지난해 4월 풀려났다.
2015년 12월에는 홍콩에서 반(反)중국 서적을 펴낸 출판업자 5명이 태국에서 실종됐다. 이 중 스웨덴 국적자인 구이민하이(桂民海·57)는 다음 해 1월 중국중앙(CC)TV에 나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했다.
2018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장이던 멍훙웨이(孟宏偉·68) 공안부 부부장(차관급)이 인터폴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사라졌다. 당국은 11일 후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억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멍훙웨이를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어떻게 데려왔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초 1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 후베이성 우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규모 발병 실태를 고발했던 인권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천추스(陳秋實·36)도 보도 직후 실종됐다. 올해 9월에야 유튜브에 등장한 그는 “그간 많은 경험을 했다”며 “어떤 것은 말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말할 수 없다. 여러분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말을 아꼈다.
드라마 ‘황제의 딸’, 영화 ‘적벽대전’ 등에 출연한 톱 여배우 자오웨이(趙薇·45) 역시 탈세 의혹에 직면했고 8월부터 행방이 묘연하다. 자오웨이와 남편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가까운 사이다. 이 부부는 알리바바의 영상사업 자회사 알리바바픽처스에 투자해 큰돈도 벌었다. 쯔유시보 등 대만 언론은 그가 프랑스로 도피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RSDL로 재판 없는 감옥살이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렇게 사라진 유명인이 ‘RSDL’을 통해 사실상 감옥살이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2012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정기회의 때 RSDL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73조를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 테러 활동, 심각한 뇌물 범죄 등으로 의심받는 자가 RSDL의 대상이라고 명문화했다. 규정에 따르면 RSDL을 통한 감금 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2년 이상 감금되는 사례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스터의 책에는 RSDL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생생히 실려 있다. 이들이 “가족에게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담당자가 “우선 TV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당신의 과오를 고백하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텅뱌오(등彪·48)는 RSDL을 ‘합법의 바깥 테두리에서 이뤄지는 장기 구속 체계이며 일반적인 구금보다 훨씬 끔찍하고 강압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수감자는 독방에 감금된다. 장시간 잠을 잘 수 없고 구타, 전기 고문, 수갑 및 쇠고랑, 지속적인 신문과 가족에 대한 협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또한 10월 유엔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이 RSDL을 통해 점점 인권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2013년 325명이었던 RSDL 대상자는 지난해 58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기록조차 없이 대상자가 된 사람을 포함하면 RSDL 체제의 피해자가 매년 1만∼1만5000명일 것으로 추산했다. 대부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며 펑솨이, 마윈, 판빙빙처럼 해외 언론에서 거론이라도 되는 사람은 십수 명에 불과하다.
페리 링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동아시아학) 또한 홍콩 프리프레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RSDL을 거세게 비판했다. 겉으로는 투옥이나 구금이 아니라 단순 감시, 가택 연금 등과 비슷해 보이지만 고문과 가혹 행위가 일상인 중국 특유의 인권 탄압 체계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빛나는 경제 성장 뒤에는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한 중국공산당의 각종 탄압이 도사리고 있다”며 RSDL을 ‘샹들리에 속의 아나콘다’로 비유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또한 “RSDL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중국에 RSDL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국제사회 전체의 인권 기준이 중국에 의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스터는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 인터뷰에서 중국이 의도적으로 연례 최대 정치 행사 전국인대에서 RSDL을 법제화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내정 간섭’ ‘주권 침해’ 등으로 반박하기 위해 일부러 공개적으로 법제화했다는 것이다.
○ 習 3연임의 걸림돌 치우기 용도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체계인 ‘만리방화벽’, 당국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시민사회와 지식인 집단의 태도 또한 유명인의 실종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만리방화벽 때문에 중국인은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해외 소셜미디어에 접속할 수 없다. 펑솨이가 웨이보에 올린 폭로글은 20분 만에 삭제됐고 ‘펑솨이’, ‘장가오리’ 같은 단어도 순식간에 위챗 등 주요 소셜미디어와 포털에서 금지어로 지정됐다. 금지어가 포함된 글은 검색이 안 될뿐더러 다른 곳으로 퍼 나를 수도 없다. 해외에서도 중국인에게 위챗으로 “펑솨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란 글을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시절에도 권력 투쟁에서 패한 거물 정치인, 반체제 지식인의 실종이 적지 않았지만 시 주석 집권 후 그 대상이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가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내년 하반기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이 자신의 장기 집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인은 좌시하지 않으려다 보니 정치인이 아닌 사람의 실종 또한 빈번해졌다는 의미다.
시 주석이나 공산당을 직접 비판한 것도 아닌 운동선수 펑솨이의 실종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안문제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시 주석이 집권 후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부패 척결 운동을 벌였는데 부총리까지 지낸 장가오리의 성추문으로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이 심각함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이번 폭로를 계기로 서방 주요국이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려고 한다는 점이 당국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라며 “미국이라는 경쟁자에 대항하려면 ‘당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 통제, 억압, 강제 구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중국 내 지식인 및 시민사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국내 여론을 통제한다 해도 중국 밖에 거주하는 많은 유학생과 지식인들이 펑솨이 사태를 알 텐데도 모두가 함구했다는 것이다.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펑솨이 또한 ‘성폭행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사태는 나중에라도 당국에 맞서고 대응하려는 중국인에게 맞서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