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 가디언은 어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K드라마 ‘지옥’을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폭력적 죽음을 다룬 K드라마라는 공통점으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신문은 지옥이 오징어게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오징어게임이 의상 등의 장치로 부모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지옥은 보다 어둡고 복잡해 앞으로 10년 동안 회자될 수작이라는 것이다.
▷개봉 하루 만인 20일에 넷플릭스 드라마 1위에 오른 이후 21일 하루 빼고 줄곧 정상을 지키고 있는 지옥은 지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다룬다. 갑자기 “너는 몇 날 몇 시에 죽는다”는 ‘고지’를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억울한 불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지대로 죽는 것을 보면서 우주적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종교의 권위를 빌려 강요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지옥에는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예고된 지옥행의 시간에 괴물에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VIP들이 가면을 쓰고 지켜보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가면을 쓴 VIP들이 게임 참여자들의 죽음을 희희낙락하며 관전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평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인간들은 필요에 따라 신(神)을 소환한다. 오징어게임의 한 참여자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신이 준 기회”라 했고, 지옥의 교주는 “신의 의도는 명확하기 때문에 너희(인간)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옥에서는 사람의 목숨 값을 30억 원으로 매기고 저승사자로부터 죽어가는 과정을 지상파 방송들이 생중계한다. 코로나19, 가짜뉴스와 유튜버가 선동하는 확증편향과 갈등 조장 등 인류를 고통과 불안에 빠뜨리는 지금의 상황이 어쩌면 잿빛 ‘지옥’이다. “뜯겨 죽을까 봐 무서워서 선하게 사는 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죄인들이 무책임한 안락을 누릴 때 선한 자들만 죄의 무게를 떠안아요.” K드라마 ‘지옥’이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