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퇴적층 목탄 분석
남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발생한 초원 산불. Carla Staver 제공
지질연대 제4기 후기인 7000년 전부터 발생한 대형 초식동물의 멸종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양상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형 초식동물 멸종이 가장 심각한 남아메리카 지역의 녹지에서는 산불이 크게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앨리슨 카프 미국 예일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25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초식동물이 줄어들면서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산림이 늘어난다는 일반적인 논리를 뛰어넘어 초식동물 멸종이 대륙 규모의 큰 화재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카프 교수는 “기후변화와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대규모 화재 예측에서 동물의 영향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생태학에서 산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불의 원인과 빈도를 지질학적 연대 규모에 걸쳐 분석하면 생태계와 기후시스템, 생물지구화학적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7000년 전부터 50년 전까지 거대 초식동물이 대륙별로 얼마나 멸종했는지를 조사하고 초식동물이 산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퇴적층에 포함된 전 세계 목탄 데이터에서 고대에 발생한 화재 양상의 변화와 기후조건에 따라 구분되는 다양한 생물계의 멸종 심각도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남아메리카처럼 초식동물의 멸종이 가장 심각한 대륙에서는 화재 빈도가 증가하고 아프리카처럼 초식동물 멸종이 적게 발생한 대륙에서는 화재가 가장 적게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7000년 전 이후 제4기 지질연대 후기에 걸쳐 몸집이 큰 초식동물의 멸종이 전 세계 산불 시스템을 크게 변화시켰음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 현재 사냥과 밀렵, 서식지 파괴로 야생 초식동물의 다양성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연구진은 초식동물의 다양성 변화가 대륙 규모의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인한 결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륙 규모의 화재 빈도 변화가 인간의 활동과는 직접적인 인과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대형 초식동물의 멸종이 오히려 산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야생 초식동물이 아닌 가축의 방목에 필요한 초지의 필요성은 역설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야생 초식동물 개체 감소와 가축 밀도의 증가가 대형 산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는 데 이번 연구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