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실패로 끝난 이상주의 망령 文정권이 불러들여 國政도 실패 소득-대출-주택 기본인 ‘大同세상’ 과연 李 신념인가, 대권욕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대낮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지옥의 사자. 무참히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진 시민들에게 신흥 종교단체 지도자가 전하는 신(神)의 메시지.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신의 메시지였을까, 아니면 신을 가장한 이 단체 지도자의 목소리였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모티브지만, 중·근세 역사를 돌아보면 신의 메시지를 ‘독점’한 자들이 되레 지옥을 펼친 사례는 많다. “신이 그것을 바란다”는 교황의 선동으로 시작돼 200년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참화를 불러온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근세까지 이어진 마녀재판이 그랬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한 그들은 지상에 신국(神國)을 세운다며 지옥을 펼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는 그런 신의 메시지가 신처럼 군림한 독재자의 이상주의(理想主義) 통치 형태로 나타났다. 독일의 유럽 정복을 꿈꾸다 결국 독일은 물론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게르만 우월주의’, 빈자도 부자도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했으나 종국에 빈곤과 공포만 남아 망한 구(舊)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문화(文化)’를 앞세웠지만 야만적인 사형(私刑)과 숙청, 권력투쟁만 남긴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정치에서 이상주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인간 본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기심과 공동체의 이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한다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게 바로 독재다. 20세기 들어 그런 이상주의 정치 실험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실패한 이상주의의 망령이 세계 10위권 이상 선진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이 나라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혁명이 아닌 촛불시위를 끝까지 ‘촛불혁명’이라고 우긴 문재인 정권이 그 망령을 불러들였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혁명을 내세운 이유는 자명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류의 이상주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의 기반을 갈아엎을 명분이 필요했던 거다.
허나, 이제 우리는 모두 안다. 문 정부의 이상주의 국정(國政)이 거의 다 실패로 끝났고, 아름다웠던 대통령 취임사의 약속들은 공수표였음을.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지한 운동권 집권세력이 워낙 무능하기도 했지만, ‘북-미 중재자론’을 필두로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제로 등 그들이 내건 이상주의 정책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탓도 컸다.
“평생 살 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처럼 꿈같은 목표를 내세우더니, 정책이란 정책은 내놓는 족족 실패해 ‘벼락거지’를 양산한 부동산 정책. 사람은, 특히 청년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데, 그 희망이 없는 땅이 지옥 아니고 뭔가. 그러고는 ‘너희 2%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듯이 보복적인 종부세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정권 말의 풍경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풍파를 겪고 그 자리까지 간 분이 그러니 또다시 묻게 된다. 이 후보가 내건 이상주의 기치는 과연 신념인가, 대권욕인가. 위기의 대한민국, 지금 필요한 지도자는 이루고 싶은 이상과 이룰 수 있는 현실 사이에 균형을 잡고, 무엇보다 이 나라 청년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다. 이상주의는 매혹적이지만 허망하다. 유토피아(Utopia·이상향)의 그리스어 어원을 풀어보면 ‘세상에 없는 곳’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