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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튜브]동경과 좌절과 구원의 계절, 12월의 음악들

입력 | 2021-11-3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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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다른 계절에는 불가능한 색다른 모험의 시기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화가 대(大) 피터르 브뤼헐의 유화 ‘눈 속의 사냥꾼들’(1565년).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첫눈이란 기록되었으나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 또는 영원히 지연되는 그 무엇 사이에 있는 것. 그리하여 예전의 첫눈은 그 이름 뿐, 우리에겐 그 이름들만 남아있을 뿐(Stat prima nix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친구와 연인들은 대개 곤경을 겪기 마련이다.

차라리 첫눈의 이데아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6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작곡가 자신은 “이 곡의 시작은 내게 첫 눈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늘 겨울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한 곡 뿐인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렇다. 느린 2악장의 한없이 긴 선율은 어둠과 고독 속에 선 사람이 자연과 자신만을 대면하는 끝없는 명상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의 작곡가로 북방의 대국 러시아의 차이콥스키를 떠올리는 데 어색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에게도 짙은 영향을 끼친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극음악 ‘눈 아가씨’ 중에서 ‘곡예사의 춤’을 먼저 떠올려 본다. 관현악의 신나는 전체 합주가 텀블링처럼 울려대고, 트럼펫은 설원을 질주하고, 탬버린과 트라이앵글이 신나게 찰랑거린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배경이다. 유명한 ‘꽃의 왈츠’에 이어지는 왕자와 설탕과자 요정의 2인무를 듣는다. 나지막하게 내려가는 선율로 시작되어 마침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장엄하게 무너져 내리는 금관의 장엄한 합주는 해질녘 그늘의 커다란 얼음 폭포처럼 막막하게 가슴을 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빼놓을 수 없다. 파리의 하숙촌, 혼자 사는 처녀는 촛불이 꺼져서 위층 시인이 사는 방으로 불을 빌리러 오고, 그만 자기 방 열쇠를 잃어버린 가운데 바람이 불어 두 사람의 초가 꺼져버린다. 더듬거리며 열쇠를 찾다가 그만 두 사람의 손이 맞닿고, 처녀의 손을 잡은 시인은 이 여인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도둑 둘이 들어와 내 마음 속의 보물들을 훔쳐가 버렸어요. 그 도둑들은 바로 당신의 두 눈이죠.” 닭살이 돋을 만큼 전형적이지만 이해해주기로 한다. 달달한 수사학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인의 대본 아닌가.

이 파리 커플의 겨울은 사랑이 덥혀 주겠지만 겨울에 좌초한 사랑은 참혹하다.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 첫 곡 ‘밤인사’에서 주인공은 연인과 그의 마을에 작별을 고하고 먼 방랑을 떠난다. 무엇이 연인의 마음을 차갑게 돌아서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가곡집의 네 번째 곡은 ‘동결’(Erstarrung)이다. 얼어붙었다는 뜻이다. 연인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고, 그의 마음이 녹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흘려보낼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작곡가 홀스트는 관현악 모음곡 ‘행성(The planets)’로 친숙한 작곡가. 그의 성가곡 ‘음산한 한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도 만물이 얼어붙은 풍경을 그린다. “음산한 한겨울, 얼어붙은 바람은 신음하네/ 땅은 쇳덩이처럼 굳었고, 물은 돌덩이와 같네/ 눈이 내려, 눈 위에 다시 쌓였네…” 그러나 그 신음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가사는 인간의 구원을 예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곳곳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된다. 한국과 일본에만 유독 두드러지는 특이한 전통이라고 하지만, 한 해의 다짐을 상기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는 인류의 하나 됨을 다짐하는 이 작품만한 것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머릿속에 남아있고 아직 달력이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을 때, 자연과 벗해 한층 차가워진 공기 속을 걸으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30번을 들어본다. 대략 스무 해 전, 베토벤의 산책지였던 칼렌베르크 언덕을 찬 바람 속에 걸었던 때를 회상한다. 마지막 악장의 나지막한 주제 선율은 마치 ’그대는 올 한 해를 의미 있게 살았는가, 다시 오는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하려 하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우리 모두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이 떠오르는 해를 희망의 눈길로 맞이할 수 있기를.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