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마케터·작가
한동안 ‘무쓸모 선물’이 유행했다. 말 그대로 쓸모없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인데, ‘2만 원 미만 무쓸모 선물 교환식’과 같이 미리 가이드를 주고 서로 준비해 오는 식이다. 내용물을 보면 통닭 모자, 소주 디스펜서와 같이 내 돈 주고는 안 살 것 같은 소위 ‘병맛’ 선물들이 많다. 송년회 때 몇 번 해보았는데, 선물을 고르고 주고받는 일련의 과정이 흡사 하나의 놀이 같았다. 통상 받는 이의 취향과 필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과 달리, 무쓸모 선물은 자리한 이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한다. 신중할 필요도 없다. 추구해야 할 가치가 오로지 재미라는 점이 묘하게 설레기까지 한다. 비실용성이 주는 해방감, ‘무쓸모’의 ‘쓸모’다.
무쓸모의 쓸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구글의 근무 문화로 ‘20% 타임제’가 있다. 모든 구성원이 업무 시간의 20%를 원하는 업무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기존 업무와 무관하지만 해 보고 싶은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정기 미팅에서 발표하고 동료를 모집하면 된다. 이제는 쓸모 있다 못해 필요 불가결해진 ‘구글 맵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비실용성이 주는 해방감이 보다 자유로운 아이데이션과 시도를 가능케 하며 다양한 신사업으로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라고 다를까. 비슷한 마음으로, 매년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놀이’를 목표로 해오고 있다. 별다른 용처가 없는 온전히 감정적 효용만을 위한 활동을 나는 놀이로 정의한다. 올해로 벌써 5년째인데, ‘벼락치기’에 익숙한 본연의 한계로 주로 11월과 12월에 밀집해 있다. 20대의 마지막이던 어느 해에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개인 화보를 찍었고, 어느 해에는 오랜 기간 마음만 먹었던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어느 해에는 창고 깊숙이 박혀 있던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다시 타기 시작했다.
또 한 해가 간다. 숱한 쓸모의 것들에 치여, 올해의 놀이난이 아직 비어 있다. 11월의 마지막 날, 2021년의 마지막 달을 남겨 놓고 자유이용권을 손에 쥔 아이처럼 칸을 매울 단어를 기껍게 고민한다. 생산성에 대한 책무를 벗어던지고 오로지 재미만을 고려하는 이 시간이 때때로 황홀하기까지 하다. 당장 쓸모는 없겠지만 배워 보고 싶었던 것, 지속하기는 어렵겠지만 참가해 보고 싶었던 모임.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무쓸모 한 일 한 가지, 고작 한 달 남은 2021년을 가장 의미 있게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김지영 마케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