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세인’]〈상〉전남대 노화과학연구소 조사… ‘20년의 변화’ 연구결과 발표 2018년 100세 남성비율 7%서 2배로… 남성의 독립적인 생활능력 커지고 가족 대신 혼자 요양기관에서 생활… 수면시간 변동 없고 소일거리 즐겨
제12차 건강백세포럼 및 한국의 백세인 20년의 변화 출판기념회가 지난달 26일 전남대 의대 덕재홀에서 열렸다. 전남대 노화과학연구소 제공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생활 여건의 개선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다. 전남대 노화과학연구소가 최근 ‘한국의 백세인 20년의 변화’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장수벨트로 불리는 ‘구곡순담’(전남 구례·곡성·전북 순창·전남 담양)’의 백세인들을 만나 건강과 삶의 변화를 분석했다. 장수벨트 백세인의 특성과 백세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구를 주도한 장수 과학자 인터뷰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구곡순담’이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벨트로 알려진 것은 2001년 한국의 백세인 연구 때문이었다. 서울대 의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장이던 박상철 교수팀은 당시 두 가지 기준으로 장수 시군을 선정했다.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노인 인구수와 65세 인구 중 85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로 전국 최고 시군을 꼽았다.
10만 명당 100세 이상이 20명을 넘고 장수비율이 6.0% 이상인 장수지역은 전남 곡성·구례·담양·보성, 전북 순창, 경북 예천 등 전국에서 6곳이 나왔다. 연구팀은 호남 내륙 산간지대에 서로 맞닿아 있는 구례·곡성·순창·담양이 한꺼번에 장수지역으로 나타난 결과에 주목했다. 이들은 이 지역을 구곡순담 장수벨트로 이름을 지었고 4개 자치단체는 2003년 행정협의회를 만들어 다양한 장수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2018년 박상철 교수가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부임하면서 구곡순담 장수벨트에 대한 조사가 다시 시작됐다. 구곡순담 백세인의 건강 특성을 살펴보고 2001년 한국인 백세인 자료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차이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최근 전남대 의대 덕재홀에서 ‘제12차 건강백세포럼 및 한국의 100세인 20년의 변화 출판기념회’를 열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8년 조사 당시 구곡순담 100세 이상자는 총 60명이었다. 구례 8명, 곡성 15명, 순창 12명, 담양 25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37명을 조사했다. 2001년 백세인은 남성이 7%였으나 2018년에는 16.2%로 나타나 남성 비율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남성의 생존율과 독립적인 생활 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백세인은 이전의 백세인과 비교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문해율)이 13%에서 49%로 높아졌다. 반면 흡연율은 13%에서 2.8%로, 음주율은 85%에서 6.1%로 크게 줄었다.
백세인의 거주 형태도 20년 전과 비교해 큰 변화를 보였다. 가족 동거 비율이 2001년 94.5%에서 2018년 55.6%로 격감했으나 혼자 사는 백세인은 5.6%에서 25%로 증가했다. 요양시설 거주도 2001년 0%에서 2018년 19.4%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거주 유형의 다양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백세인의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8.88시간으로 2001년 9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활동 범위는 2001년 방 안에 머무는 경우(37.5%)가 가장 많았지만 2018년 조사에서는 방 안에 머무는 비율(21.2%)이 낮아졌다. 그 대신 집 안이나 이웃집, 마을 밖 밭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인지능력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으나 한국판 노인 우울 척도(GDS-K)로 측정한 우울증 지수는 크게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20년 전 백세인에게는 6·25전쟁의 가족 피해에 관한 심리적 상처가 남아 있었지만 현재 백세인에게는 그런 상흔이 적은 게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광성 교수는 “구곡순담 백세인의 건강 상태와 삶의 변화는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겪은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며 “이 연구를 기반으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 남녀 간 수명 차이를 줄이는 연구와 함께 장수유전체 발굴 등 한국 백세인 종적 코호트 구축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