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서울시 시민단체 지원 400% 증가 ‘비정부기구’답게 재정적 독립 모색해야
이진영 논설위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임 시장 시절 시민단체 지원 사업을 감사하고 지원 예산을 삭감하자 전국 1090개 단체가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을 결성했다. 서울시의 ‘예산 차별 편성’이 ‘재량권 남용’이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출신인 박원순 시장 집권기에 시민단체들은 황금기를 누렸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의 시민단체는 2295개로 9년 전보다 80% 증가했다. 이 중 절반가량인 1250개 단체가 올해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명목으로 서울시에서 1694억 원을 지원받았다. 2012년 지원액의 5배가 넘는다. 10년간 총 1조318억 원이다. 마을, 청년, 도시재생, 주민자치 등 분야도 다양하다. 서울시의회에선 “서울시 예산을 받으려면 시민단체를 만들라는 얘기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 막대한 예산의 집행 실태가 서울시의 분야별 감사와 평가로 드러나고 있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시민단체 출신이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돼 단체 지원 업무를 맡는다.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둘째는 서울시가 단체에 직접 예산을 주지 않고 ‘지원센터’라는 중간조직을 거치도록 한다는 점이다. 사무실 임차료나 인건비 모두 시민이 낸 세금에서 나가는 센터 역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데, 유통 단계가 늘어나는 만큼 최종 수혜자인 시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어지지만 시민단체 일자리는 많아진다.
오 시장의 정치적 감사로 몰아붙일 일만은 아니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도 “시민단체가 권력화되기 시작하고, 서울시 집행부로 들어오고, 또 수탁을 받아 일하고, 공무원들은 그 사람들 눈치 보기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4월 ‘민간단체의 관변화 방지’를 위해 시민단체의 ‘자부담 확대’를 건의하는 보고서도 냈다.
서울시정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가 ‘민관 협치’라며 시와 한 몸이 돼 도시재생, 주민자치, 사회적 경제 실험에 몰두하는 동안 서울시민의 행복지수와 도시 경쟁력은 뒷걸음질쳤다. 더 충격적인 건 시민단체의 평판 추락이다.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서 시민단체 신뢰도는 2013년 50.5%에서 지난해 46.7%로 하락했다. 시민단체의 주요 감시 대상인 정부(49.4%)나 대기업(50.4%)보다도 낮아졌다. 청렴도 역시 정부와 대기업에 뒤진다.
행정은 실패하면 시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행정에 개입해 실패하면 그 책임은 어떻게 묻나. 1090개 단체는 집단행동을 예고하면서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사유화를 멈추겠다”고 했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서울시 사유화’를 의심하고 있다. 행정의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비정부기구’라는 이름대로 정부지원금 의존증부터 버려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