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임희윤 기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이후 인간 연령 30세를 주제로 제작된 가장 강렬한 음악 작품이 아닐까.
영국 가수 아델이 지난달 6년 만에 낸 정규앨범 ‘30’ 말이다. ‘Rolling in the Deep’이나 ‘Someone Like You’ 같은 강력한 싱글이 없어도 좋다. 재생 버튼은 일종의 방아쇠. 귀를 향해 발사된 12곡 전곡이 가슴이란 과녁 한복판에 탄환이 돼 박혀버린다. 겨울의 입구만큼이나 깊고 검게 감정적 상흔을 벌려놓는다.
아델은 또 한 번 명작을 만들었다. 각각의 노래가 저마다 빛난다. 모여서 입체적 진경을 이룬다. 대서양 양쪽, 즉 미국과 영국의 최고급 녹음기술과 편곡이 총동원됐다. 로파이(lo-fi·의도적 저음질)부터 화려한 오케스트라, 복고적 솔(soul)과 감각적 비트가 저마다의 등고선을 그린다. 청각적 골짜기를 파 넣고 유려한 능선을 쌓아 올려 음반에 깊이와 공간감을 부여한다.
#2. ‘30’에는 무려 6분이 넘는 곡이 5곡이나 되는데 ‘Hold On’도 그중 하나다. 3분 이상을 비트 없이 무채색 동양화처럼 엇박자로 반복되던 피아노 코드가 중반부 정박자의 드럼 타격을 만나는 순간, 아델의 가창은 긴장과 이완을 넘어 해방의 포물선을 뽑아낸다. 4분 27초부터 9초 동안 이어지는 ‘아델식’ 3단 고음 말이다. 가사가 ‘hold on!’이 아닌 ‘밥 줘!’나 ‘휴가!’였더라도 저 청각적 명장면은 여전히 성가(聖歌)처럼 절절했으리라.
#3. “저는 요즘 셔플(임의 재생)의 힘을 맹신합니다!”
얼마 전, 한 음악 플랫폼 업계 관계자를 만나 필터 커피를 마시다가 나는 진하게 고해했다. 대부분의 앨범을 이제 더 이상 첫 곡부터 순서대로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관계자는 “어머, 저도!”라며 맞장구를 쳐줬다.
음원 플랫폼에 기본으로 장착된 셔플 버튼은 여러모로 편리하고 근사하다. 그렇다 보니 여러 아티스트의 개별 앨범을 들을 때도 습관적으로 셔플을 택한다. 1번 곡부터 듣는 일은 거의 없다. 핑크 플로이드의 ‘In the Flesh?’(1979년)나 라디오헤드의 ‘Planet Telex’(1995년)는 이런 날 향해 눈을 흘기리라.
#4. 그런데 갑자기 아델의 죽비가 날아온다. ‘앨범은 순서대로 들어야 돼! 원래 앨범이란 게 그런 거 아니에요?’
#5. 아델의 음악적 왕정 복고주의, 즉 ‘앨범 지상주의’ 선언은 디지털은 물론이고 아날로그 시장에도 폭풍을 몰아쳤다. 아델이 약 50만 장의 ‘30’ LP레코드 제작을 앨범 발매 반년 전 세계 주요 LP 공장에 의뢰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세계적 LP 수요 증가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허덕이던 지구상 LP 생산 라인은 급기야 차질까지 빚었다.
#6. 업계 ‘공룡’들의 입김은 덩치만큼 세다. 몇 년 전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디지털 음원 플랫폼에서 자신의 모든 음악을 빼겠다며 줄다리기를 벌인 일도 기억난다. 그러나 비합리적 횡포만 부리지 않는다면 어떤 공룡은 때로 꽤 반갑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 본의 아니게 2년 만에 45kg의 체중을 감량했지만 아델은 이제 음악계의 티라노사우루스를 넘어 아르젠티노사우루스(몸길이 35m, 무게 70t 추정)처럼 다가온다. 그의 뚝심과 장인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