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로공사에 완패 뒤 팀 떠나
프로배구 IBK기업은행 지휘봉을 잡은 뒤 세 경기 만에 자진 사퇴한 김사니 IBK기업은행 감독대행. KOVO 제공
여자 배구 IBK기업은행 김사니 코치(40)는 지난달 16일 광주 페퍼저축은행전이 끝난 뒤 팀 숙소를 벗어나면서 남녀부를 통틀어 프로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팀을 무단이탈한 코치가 됐다. 그리고 감독대행을 맡은 지 12일째가 되는 2일 김천 한국도로공사전을 앞두고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프로배구 역사상 최초로 자진 사퇴한 감독대행이 됐다.
김 대행은 IBK기업은행이 1시간 17분 만에 0-3(13-25, 20-25, 17-25)으로 완패한 이날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나도 무언가 책임이 있다. 반성해야 한다. 너무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김 대행이 코치도 맡지 않고 완전히 팀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음 경기인 5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는 안태영 코치가 팀을 지휘할 공산이 크다.
김 대행은 ‘조송화 무단이탈 사태’ 이후 배구계에서 ‘공공의 적’이 된 상태였다. IBK기업은행 주장이자 주전 세터였던 조송화(28)는 지난달 13일 훈련 도중 팀을 무단이탈했다. 구단 관계자 설득으로 사흘 뒤인 지난달 16일 광주에서 열린 페퍼저축은행전 때 팀에 합류했지만 이후 다시 팀을 나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코치였던 김 대행 역시 무단으로 팀을 떠났다가 사흘 뒤 돌아왔다.
이번 시즌 서 전 감독과 함께 IBK기업은행에 부임한 조완기 수석코치는 이미 팀을 떠난 상태라 김 대행이 지휘봉을 잡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조 코치가 팀을 떠나는 데에도 김 코치가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 증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IBK기업은행은 가족 간병을 이유로 조 코치가 팀을 떠났다고 설명했지만 배구계에서는 이번 사태 전부터 조 코치가 김 코치와 갈등을 겪다가 팀을 떠났다는 시선이 우세했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모양새로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김 대행의 전임 감독 ‘저격’은 끝나지 않았다. 김 대행은 처음 팀을 지휘한 지난달 23일 흥국생명전을 앞두고 “(서 전 감독이)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있는 상황에서 ‘모든 걸 책임지고 나가라’면서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과 폭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업적이 있어서 (무단이탈이라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서 전 감독이 “도대체 모욕적인 말과 폭언이 무엇인가”라고 항변하자 김 대행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 대신 “나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책임감을 느끼고 지도했어야 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후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을 시작으로 프로배구 여자부 감독 전원이 “김 코치와는 경기 전 악수를 나누지 않겠다”고 뜻을 모았다. 악수 거부는 사실상 김 대행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프로배구 원년(2005년)부터 선수로 활약한 김 대행은 한국도로공사에서 뛰던 2005시즌과 다음 시즌인 2005∼2006시즌 연속해 세터상을 받은 국가대표 세터 출신이다. 2014∼2015시즌에는 IBK기업은행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면서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김 대행이 2017년 5월 은퇴하자 IBK기업은행은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하면서 예우했다.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던 김 코치는 지난해 5월부터 친정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결국 두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나게 됐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